포럼 스태프
라이칭더(Lai Ching-te) 대만 총통 당선인은 자신의 공직 생활을 이끌어 온 원동력으로 빈곤과 민주주의 수호라는 두 가지 결정적인 요인을 꼽았다.
2024년 5월 20일에 대만 총통으로 취임 예정인 라이 당선인은 6남매 중 막내로 신베이시에서 성장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라이 총통 당선인이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탄광 사고로 사망했다.
그는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내게 남긴 가장 큰 자산 중 하나는 가난이었다”면서 “이런 환경 덕분에 나는 모든 일에 더 열심히, 더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었다. 가난은 내게 투지를 준 것이다”고 말했다.
의사가 된 라이 당선인은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공중보건학을 공부했다. 대만 내각 위원과 여당 민주진보당 비서장을 역임한 뤄웬지아(Luo Wen-jia)는 닛케이 아시아지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끈기는 분명 성장 환경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평했다.
라이 당선인의 지지자들은 그가 주거비 상승이나 실업률 증가와 같은 사회적 문제에 더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이유가 열악했던 어린 시절과 시장으로서의 경험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랜 민진당 당원인 쳉춘젠(Tseng Chun-jen)은 뉴욕타임스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혹독했던 가난을 겪은 사람이기 때문에 당시 풀뿌리 민중이 겪은 어려움에 대한 이해도가 깊다”고 말했다.
의사였던 라이 총통 당선인을 정계 입문으로 이끈 결정적 계기는 중국의 군사적 위협과 선거 개입 등 대만에 대한 중국의 강압적 태도였다. 그 시발점은 1996년 대만 최초의 총통 직접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을 위협하기 위해 인민해방군이 대만 연안 해역에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었다.
그는 월스트리트 저널 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내게 대만의 민주주의에 뛰어들어 갓 시작한 이 실험을 방해 세력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고 회상했다.
그는 입법위원, 2선 타이난 시장, 행정원장을 거쳐, 2020년에는 현재 임기 제한으로 퇴임을 앞두고 있는 차이잉원 총통 정권에서 부총통 자리에 올랐다. 워싱턴포스트 신문은 정치 경력 초창기 시절의 라이 당선인은 이상주의적이고 진지하며, 업무에 성실하고, 정부 정책의 세부적인 부분까지 신경쓰는 사람이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정말로 느긋하게 보였던 유일한 시간은 대만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야구에 대해 이야기할 때였다”라고 신문은 전했다.
민진당이 전례 없는 3연임(12년 연속 집권)에 성공하면서 라이 총통 당선인은 정책의 연속성을 약속했다. 그는 선거 기간 동안 “대만의 평화와 민주적 성과, 양안 관계의 현상유지를 수호하겠다는 나의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는 2024년 4월 말 국방, 외교, 안보 분야의 주요 각료를 유임헸다.
이러한 결정은 중국 공산당이 대만을 무력으로 병합하겠다고 위협하며 군사적 위협과 기타 회색 지대 전술을 지속적으로 시도하는 가운데 내려진 것이다.
라이 총통 당선인은 선거 승리 이후 2024년 선거는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사이에서 대만이 민주주의의 편에 설 것”임을 전 세계에 보여준 사건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