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스태프
우크라이나 무력 침공으로 러시아 정권의 고립과 약화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대통령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러시아 지지국 중 가장 중요한 중국과도 불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번 분쟁은 러시아 극동 지역을 둘러싸고 지난하게 이어져 온 영토 분쟁과 관련 있다. 이 지역은 러시아가 태평양 함대 기지를 둔 블라디보스토크가 있는 곳으로서 자원이 풍부한 북극으로 진입하는 전략적 관문이기도 하다. 근 2세기에 걸쳐 양국 간 수많은 조약과 협정이 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중국 민족주의자들은 러시아가 중화 제국으로부터 이 지역을 빼앗았다고 주장한다. 한편 극동 지역의 러시아 주민들은 중국과 연계된 기업의 투자가 늘어나는 것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2024년 2월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은 유럽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분쟁에 빠뜨리고 글로벌 시장에 혼란을 불러일으킨, 올해로 만 2년이 넘게 계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근거 없는 역사적 주장을 다시 한 번 인용했다.
푸틴의 이러한 선택적 발언은 중국 내 소셜미디어 사용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며, 일부는 중국 당국의 검열을 우회해 푸틴의 위선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고 뉴스위크지가 보도했다. 한 사용자는 “역사를 따지자면 러시아는 100여 년 전에 우리에게서 훔쳐간 블라디보스토크와 광활한 영토를 돌려줘야 한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렸다.
이러한 소유권 주장은 소셜미디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2023년 8월 중국 천연자원부는 러중 국경 지대에 위치한 볼쇼이우수리스키 섬을 중국 영토로 표시하는 등, 일방적이고 자의적으로 경계선을 표시한 지도를 발표한 바 있다. 뉴스위크지는 이 지도가 약 20년 전 350제곱킬로미터의 이 섬을 대략 반으로 나누기로 한 양국의 합의를 무시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 대가로 중국은 러시아의 다른 영토에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전 버전의 지도에서는 블라디보스토크를 포함한 러시아 영토가 중국어 지명으로 표기되기도 했었다.
이 분쟁의 시발점은 최소 1860년, 제2차 아편전쟁에서 패한 중국 왕조가 이 지역을 제정 러시아에 양도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로부터 1세기 후 중국과 소련의 공산군은 블라디보스토크 북쪽 국경에서 충돌했다.
석유, 석탄, 금, 어류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러시아의 광활한 극동 지역에는 현재 약 800만 명의 인구가 거주 중이다. 한편 이 지역과 접하고 있는 중국의 3개 성에는 약 9,000만 명의 중국인이 거주하고 있다고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전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6,500km 떨어져 있는데, 이는 블라디보스토크와 베이징 사이의 거리에 비해 거의 5배가 먼 거리다.
때문에 이러한 상황은 ‘지정학적 시한폭탄’이라고 불린다.
우크라이나 침공 후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지원은 계속되고 있지만 분석가들은 중국의 생각과 동기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들은 중국의 최북단이 북극권에서 남쪽으로 1,500km나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극의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중국의 시도에 주목한다.
랜드연구소는 2022년 12월에 발표한 글에서 “중국은 북극 거버넌스에서 더 영향력 있는 입지를 차지하고자 ‘근북극 국가’임을 자처해왔다”고 지적했다.
분석가들은 푸틴과 시진핑(Xi Jinping) 중국 주석이 양국의 ‘무한한’ 우정을 호언하기는 했으나 극동 지역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관철하고자 하는 중국이 전쟁으로 세력이 약해지고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러시아의 현 상황을 이용하려 들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 동해의 경계상에 위치한 이 분쟁 지역은 러시아 북극 해안의 북극항로와도 맞닿아 있는데, 이 항로는 유럽과 인도태평양 지역 간 운송 거리를 약 40%까지 단축할 수 있는 해상루트다.
인터내셔널 폴리시 다이제스트의 한 기고문은 “중국의 행동은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23년 8월호에 실린 이 글은 “상호 지원을 약속하는 요란한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러시아에 첨단 미사일이나 드론 기술을 넘겨주는 것이나… 천연가스 및 파이프라인 계약을 추가로 확장하는 것에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다.
“중국은 블라디보스토크 주변의 극동 지역을 되찾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고 설명했다.
남중국해를 필두로 히말라야의 인도-중국 국경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영토 침범과 토지 수탈 전력은 주권 포기를 둘러싼 러시아의 우려를 더욱 키울 뿐이다.
미국의 싱크탱크 제임스타운 재단에서 발행하는 간행물 유라시아 데일리 모니터는 2023년 12월호의 한 기고문을 통해 “러시아의 취약점을 이용하는 중국의 태도는 놀랍지 않다”면서 “전문가들의 관측에 따르면… 중국이 러시아를 지원하는 것은 러시아의 반서방 내러티브를 자국의 선전에 이용하고 러시아 극동 지역을 ‘자원 식민지’로 취급하는 등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될 때뿐이다. 중국이 손해를 봐가면서 러시아를 지원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