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T 레예스(Maria T. Reyes)
중국의 공세적 행보로 남중국해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2023년 12월 말 일본이 자국의 방공 레이더 시스템을 필리핀에 공식 제공함으로써 필리핀의 감시 역량 강화에 일조했다.
제트 전투기와 미사일을 장거리에서 탐지하는 해당 레이더는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약 270킬로미터 떨어진, 영유권 분쟁 해역 인근의 옛 미군기지인 월리스 공군기지에 설치되었다.
이번 납품은 2020년 필리핀이 약 1천 7백억 원(1억 3천만 미국 달러)에 발주한 장거리 경계관제 레이더 고정형 3기와 이동형 1기 중 첫 번째 레이더에 해당되는 것으로, 중국이 필리핀의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공세를 강화해가고 있는 와중에 이루어졌다.
역시 일본 미쓰비시 전기가 납품할 나머지 레이더는 2026년까지 인도될 예정이며, 운용 지역은 아직 특정되지 않았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대부분을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러한 주장을 기각한 국제 재판소의 2016년 판결을 계속 무시하고 있다. 중국군은 합법적인 작전을 수행하는 다른 영유권 주장국의 선박을 일상적으로 괴롭히고 있다. 가령 2023년 12월 중국의 해안 경비대 및 해상 민병대 함정은 필리핀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해당하는 남중국해 해역인 서필리핀해에 주둔 중인 필리핀 군함에 보급품을 전달하던 필리핀 선박에 물대포를 발사하고 돌진하는 등 필리핀 군을 괴롭혔다.
일본 입장에서 이번 레이더 프로젝트는 2014년 무기 수출 금지 조치를 완화한 이후 최초의 방위 장비 수출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이정표라 할 수 있다.
스티븐 파레노(Stephen Parreno) 필리핀 공군 중장은 레이더 인도식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역내 안보 지형을 고려하면 레이더 시스템의 중요성은 특히나 두드러진다”며, “당국의 통합 방공 시스템의 일환으로 운용될 이 레이더는 훨씬 먼 거리의 위협을 더욱 정밀하게 탐지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군의 요격 대응 시간을 단축시켜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해당 레이더의 탐지거리는 항공기의 경우 약 555km, 탄도 미사일의 경우 약 930km이다. 필리핀 공군 인력은 레이더 운용과 관련해 일본 현지에서 교육을 받았다.
라 우니언(La Union) 북부의 산페르난도(San Fernando)에 위치한 전 미군 기지는 1950년대산 레이더가 폐기된 2015년 이후 레이더 역량이 계속 부재한 상태였다.
하와이에 위치한 싱크탱크인 퍼시픽 포럼의 마크 마난탄(Mark Manantan) 사이버보안 및 핵심기술 책임자는 포럼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진전을 계기로 필리핀이 남중국해에서 쓸 수 있는 카드가 더 늘어난 셈”이라고 말하면서 “물론 외교적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일본과 필리핀의 관계 개선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중재 판결 이후 유엔해양법협약을 중심으로 한 국제법에 대해 명시적인 지지와 인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분위기다”라고 설명했다.
일본은 억제력 강화를 위해 필리핀을 비롯한 유사입장국의 방위 역량 현대화를 지원하고 있다. 2023년 12월 도쿄에서 열린 일본-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양측은 해양 안보 협력 강화를 약속했다.
마난탄은 “역내 차원에서 보면 필리핀-일본의 전략적 협력은 동남아시아에 파급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그 분기점은 아세안-일본 관계수립 50주년 정상회의로, 아세안-일본 관계는 2023년 포괄적 안보 파트너십으로 격상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일본은 그 외에 말레이시아와 베트남과 협력하는 등, 다른 아세안 국가들과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밝히며,
이러한 진전은 현 상태를 바꾸려는 일방적인 시도에 저항하고 국제법의 강력한 준수를 지지하는 아세안의 입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리아 T 레예스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활동하는 포럼 기고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