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령 (퇴역) 미미 윈 버드(Miemie Winn Byrd) 박사/대니얼 K 이노우예 아시아 태평양 안보 연구소
2년 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미얀마 군부는 지금 붕괴 직전에 놓여 있다. 쿠데타를 계획했던 이들은 2021년 2월 1일,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전복하고 해당 정부의 지도자인 아웅산 수지(Aung San Suu Kyi) 여사와 다른 고위 관리들을 구금하는 바람에 국가의 통치권 장악에 실패했다.
쿠데타 초기에는 평화 시위와 시민 불복종이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군부의 잔인하고 무자비한 탄압으로 인해 이와 같은 비폭력 시위는 곧 무장 저항으로 변모했다. 미얀마 전역에 걸친 군부의 탄압으로 인도주의적 위기, 불안정, 안보 문제가 촉발되었으며, 이는 미얀마 국경을 넘어 확산되기 시작했다.
국민통합정부(National Unity Government)가이끄는 저항 연합은 많은 여성을 비롯해 국민의 90% 이상이 동원되어 인민방위군(People’s Defense Force)을창설하고, 전투로 단련된 민족혁명조직들(ERO, ethnic revolutionary organization)과 전술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국민들의 끈기가 군부에 엄청난 압력을 가하는 움직임에 어떻게 힘을 실어주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고질적인 부패, 정실 인사, 자만심으로 가득찬 군부는 전투 효율성과 전문성을 잃었다. 이로 인해 군부는 무장 범죄 조직으로 전락했다. 이런 군부는 심지어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민간인, 조직적이고 자원이 풍부한 인민방위군 대원들, 경험이 풍부한 민족혁명조직 등 다양한 성분으로 구성된 허술한 연합군과도 지상 전투를 벌이지 못한다. 군부는 국민통합정부, 인민방위군, 민족혁명조직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차단하고자 마을을 공습하는 방식에 의지하고 있다.
군부가 자체적인 무능으로 무너지는 동안 연합 저항 세력은 통합된 지휘 체계를 갖추고 국제 사회로부터 실질적인 지원을 받아야만, 성공을 굳히고 군부 저항의 전환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불안정의 역사
버마라고도 알려진 미얀마는 1962년부터 2011년까지 잔혹한 군부 독재자의 통치 아래 오랫동안 정치적 불안을 겪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국가 안정의 수호자라고 자처한 군부가 소수 민족을 억압함에 따라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 지속된 소수 민족 반란이 일어났다. 2011년 군부는 중국에서 벗어나 서방과의 관계를 재개하며 다변화를 꾀하기 위해 민간 정부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의회 의석의 25%를 현역 군인에게 할당하고 개헌 시 의석 75%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등 군부는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이러한 시도도 민의를 억누르는지는 못했다.
2015년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미얀마의 민간 정당 민주주의민족동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이 총선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잡았다. 민주주의민족동맹은 2020년 선거에서도 또 한 번 압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민 아웅 흘랭(Min Aung Hlaing) 사령관이 이끄는 군부는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했다. 쿠데타는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불법으로 널리 간주되었고, 민주주의의 회복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와 불복종을 촉발시켰다. 군부는 실탄, 최루탄, 물대포를 사용하여 군중을 해산하며 무력으로 대응했다. 이후 군부가 스스로를 국가행정위원회라고 선언하며 보안군이 시위대와 그 가족을 자의적으로 체포하고, 고문 및 살해까지 하기 시작하면서 시민들의 평화 운동은 무장 저항으로 탈바꿈했다.
민간인에 대한 공격으로 많은 국민들이 이웃 국가로 피난을 떠났고, 마을에 대한 공습과 방화로 국내 실향민과 난민이 증가하면서 위기는 더욱 심화되었다. 유엔에 따르면 쿠데타 이후 2023년 3월 기준 16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으며, 약 1,800만 명이 식량, 식수,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있어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얀마 군부는 인터넷을 끊어버리고 이에 대한 접속을 차단하여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구호단체가 접근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미얀마의 인도주의적 위기는 계속 악화되고 있으며 국제 사회는 군부의 행동을 비난하며 민주주의 회복을 촉구하고 있다.
벼랑 끝에 선 군부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군부는 계속 연합 저항군에 밀리고 있다. 특히 사가잉(Sagaing)과 마궤(Magway) 지역에서 인민방위군이 군부 행정관의 대부분을 축출하면서 군부의 통제력이 약화됐다. 군부는 국경 지역도 지역 민족혁명조직에 빼앗겼다. 독립적인 전문가들에 따르면 2023년 4월 중순까지 군부는 미얀마의 330개 마을 중 약 72개, 즉 국토의 절반도 미치지 못하는 지역에 대해서만 통제권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군부는 여러 전선에서 싸워야 하는 상황으로 인해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2022년 7월 미국평화연구소(U.S. Institute of Peace (USIP))는 군부가 더이상 병력 모집과 훈련을 못하게 되자 “전국의 주요 경찰 기능을 해체하고 경찰관들을 최전선으로 보내는 절박한 조치를 취했다”고 보고했다. 2021년 11월 뉴욕 타임스 신문은 쿠데타 발생 이후 미얀마 국군 사관 학교는 67년 역사상 처음으로 신입생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군인 대부분은 군 소속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한다. 탈영한 전 군인에 따르면 군인의 70%가
더 이상 싸울 의지가 없다고 한다. 탈영 군인들은 민간인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은 후 군대를 떠나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군부가 군인 가족들을 수용소로 옮기고 이동을 제한하여 사실상 인질로 붙잡아 두었기 때문에 많은 군인들이 탈영하지 못하고 있다. 공군 조종사였던 한 탈영 군인은 자신이 전투기의 조종석에 앉았을 때 무장 경비병들이 자신의 집을 둘러싸고 있었고 폭격 임무를 마친 후에야 집에서 떠났다고 말했다. 많은 군인 가족들은 강제로 전투에 참가하여 무급으로 기지를 경비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탈영과 이탈은 군대 내 사기 위기를 초래했다. 2022년 중반에 탈영한 한 대대장은 부대 병력이 약 800명에서 150명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많은 지휘관들이 탈영하거나 전투 중 사망한 병사들의 월급을 챙기면서 군부는 병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국립 대학교에 따르면 군인 3,000명과 경찰 7,000명을 포함하여 10,000명 이상의 보안 요원이 탈영했다.
사기 저하와 병참 체계 붕괴로 인한 기반 손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군부는 주로 공군 전력에 의존하여 국민을 억압하고 있으며 쿠데타 주도자들은 군사 통치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결의를 지속적으로 잘못 계산하고 있다. 민생에 대한 군부의 무시는 군인에 대한 대우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군 지휘관들은 점점 더 고립되고 있으며, 자기 보존과 이익에만 집중하고 있다. 군부는 대규모 인명 피해를 통해서만 국가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저항 세력이 압도적인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배제하고 군부의 이와 같은 사고방식을 고려해본다면, 보다 전략적이고 비살상적인 전술을 전개하는 것이 군부를 협상에 나서게 하는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
하나됨을 향한 움직임
군부가 잘못된 관리와 부패로 붕괴되는 동안 저항 연합은 승리를 공고히 하고 유지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 쿠데타 이후 민족무장조직은 민족혁명조직의 무장 조직으로 국민통합정부와 협력하여 인민방위군을 훈련하고, 지원하고, 장비를 제공해왔지만, 모든 단체의 노력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보다 일관된 지휘 체계가 필요하다.
민족무장조직은 인구의 약 30%를 차지하는 소수민족에 대한 중앙 군사 정부의 탄압과 차별에 맞서 지역 자치와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싸우며 수십 년 동안 미얀마의 정치 지형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해왔다. 24 여 개의 민족무장조직은 각기 다른 영토, 역사, 불만을 가진 다양한 소수민족을 대표한다.
민족혁명조직은 지휘의 통일성을 달성하기 위해서 정치 체제 내에서 자율성과 평등을 보장하는 연방 민주주의를 보장해야 한다. 이러한 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데 필요한 신뢰는 역사적 오해와 현재 민주주의민족동맹으로 대표되는 버마족 다수파의 약속 파기로 인해 구축이 어려웠다. 비록 국민통합정부가 구두로 보장했지만, 민족혁명조직은 민주주의가 회복된 후 그러한 보장이 어떻게 시행될지에 대해 여전히 우려하고 있다. 2023년 3월, 일곱 개의 강력한 민족무장조직으로 구성된 연방 정치 협상 및 자문 위원회는 버만 다수당과 협력하기로 합의했지만 권리를 얻고 연방 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자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통합정부는 저항 연합을 강화하기 위해 민족혁명조직들에게 더 큰 보장을 제공해야 한다.
국제 대응
국제 사회는 미얀마의 민주주의 회복, 정치범 전원 석방, 미얀마에 대한 전 세계적인 무기 금수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2022년 12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15개 이사국 중 12개국이 군부의 인권 침해를 규탄하는 표결에 참여했지만 인도, 중국, 러시아는 기권했다.
유럽연합, 영국, 미국은 군부와 군부 지도자들에게 자산 동결과 여행 금지등의 제재를 가했다. 미국 의회는 2022년12월 버마법(Burma Act)을 통과시켜 국민통합정부, 인민방위군, 민족무장조직, 전직 군인들에 대한 비살상 기술 지원을 승인했다.
쿠데타 초기부터 중국과 러시아는 대체로 군부를 지지했지만 미얀마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보호하기 위해 양측 모두에 지원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중국은 일대일로 인프라 계획에 따라 중국 -미얀마 경제회랑(China-Myanmar Economic Corridor)의 일환으로 철도, 고속도로, 석유 및 가스 파이프라인, 인도양의 차우크퓨(Kyaukpyu)에 최소 1개 이상의 항구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카친(Kachin)주의 이라와디(Irrawaddy) 강에 수력 발전 댐을 건설하는 문제도 난관에 봉착해 있다. 2022년 10월 미국평화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 댐에서 생산되는 전기의 90%가 중국으로 수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내정 불간섭 정책을 따른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미얀마 내정에 점점 더 깊이 관여하고 있다. 중국은 군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민족무장단체를 달래려 시도하고 있다. 중국이 미얀마에 경제 및 외교적 지원을 계속하고 군부를 규탄하지 않으면서 중국의 동기에 대한 우려와 광범위한 비판이 일어나고 있다.
분석가들에 따르면 중국은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면서도 부분적으로는 양측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양측 모두에 무기를 계속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무기와 군수품은 전쟁 범죄와 반인도적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군부에 제공됐다. 이와 동시에 중국은 서방 국가들이 미얀마에서 해결책을 모색하지 못하게 막아왔다.
아세안의 입장
한편 아세안(동남아시아 국가 연합)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군부가 민주주의를 회복하도록 압박해야 한다. 2021년 4월에 승인된 아세안의 5대 합의안은 폭력 행위의 즉각적인 중단, 모든 당사자 간의 건설적인 대화, 특사 임명,인도적 지원 제공, 특사의 미얀마 방문을 요구하고 있다. 같은 달, 군부 지도자 민 아웅 흘랭은 합의안에 동의했지만 군부의 폭력 캠페인은 계속되고 있다.
비평가들은 합의안에 군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메커니즘이 부족하고 합의안이 아세안이 회원국의 내정에 대한 불간섭 원칙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군부를 비판하는 회원국이 있는 반면 발언을 주저하는 회원국도 있어 위기 해결 방법에 대한 내부 단결 부족이 아세안의 노력을 저해하고 있다.
여성의 중요한 역할
군부에 반대하는 이전 봉기와 달리, 현재 민주화 시위 참가자의 약 60%가 여성이다. 카레니 민족 방위군(Karenni Nationalities Defense Force (KNDF)) 제5대대는 쿠데타 이후 여성 전투부대를 구성한 최초의 민족무장조직이었다. 그 이후로 많은 민족무장조직과 인민방위군 부대에 여성 전투원이 소속되어 있다. 미아웅 여성 전사는 사가잉 지역의 군부에 대한 지뢰 공격으로 유명하다. 치명적인 전투 임무에 참여하는 여성도 일부 있지만 남성보다 많은 여성들이 비살상 저항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성들은 지역 주민을 동원하고 조직하여 저항을 지원하고 유지하는 데 주력한다. 여성들의 비살상적 노력은 주민들에게 복원력을 불어넣고 전례 없는 수준의 전국적인 정권 거부를 지속시키고 있다. 여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통합정부, 인민방위군, 민족혁명조직, 민족무장조직, 기타 조직 내 리더십 직책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여전히 부족하여 운영 효율성을 높이지 못하고 있다.
국민통합정부의 역할
전반적으로 쿠데타에 대한 가장 고무적인 반대의 목소리는 미얀마 국민들로부터 나왔다. 유엔 주재 미얀마 상임대표 대사 쿄 모 툰(Kyaw Moe Tun)은 유엔 총회에서 쿠데타를 규탄하고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요청하는 등 역사적으로 전례 없는 입장을 취했다. 그는 미얀마 외교관으로서 처음으로 국제 무대에서 군부의 행동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의 등장 이후 국민통합정부는 군부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민주주의민족동맹 의원, 소수민족단체, 시민사회 지도자들의 연합으로 부상했다.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합법적인 정부라는 국민통합정부의 선언은 미얀마 정치 지형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고,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군부의 정통성에 중대한 도전을 제기했다.
국민통합정부 결성의 가장 주목할 만한 측면 중 하나는 종종 대립했던 다양한 정치 및 민족적 집단을 통합했다는 점이다. 국민통합정부의 결성은 협력과 협업이 더 포용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로 나아가는 길을 열 수 있는 미래에 대한 약속을 담았다.
하지만 다른 국가들의 공식적인 인정 부족을 비롯한 수많은 난관이 국민통합정부의 영향력을 방해했다. 이로 인해 국민통합정부의 자원과 지원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는 동시에 민주화 세력에 대한 군부의 탄압은 국민통합정부가 효과적으로 활동하는 데 걸림돌이 됐다.
국민통합정부가 저항 연합을 성공으로 이끌려면 다수 민족과 소수 민족 간의 깊은 불신 등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동시에 의미 있는 국제적 지원을 확보해야 한다.
승리로 가는 길
민주화 저항 연합은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정이 필요하다. 지금부터 승리로 가는 길은 치명적인 행동보다는 다음과 같은 비살상적 조치에 달려 있다.
• 국민의 지지를 유지하고, 전 세계적인 압박을 높이고, 탈영을 확대하기 위한 일관된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실행한다.
• 여성 배치, Z세대 역량 강화, 전직 전투원 활용 등 인적 자원과 인재를 최적화한다.
• 정보 작전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탈영 군인에 대한 체계적인 보고를 통해 적을 이해하는 데 집중한다.
• 민족무장조직이 지휘와 노력을 통합할 수 있도록 정치적 보장을 제공한다.
분쟁이 3년째로 접어들면서 미얀마 국민들은 전투에 지쳐 조국의 안정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90% 이상이 군부 통치가 장기적인 안정을 가져올 수 없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저항 연합 세력은 전환점에 도달하기 위한 중요한 진전을 실현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