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열등한 기술로 치부되었던 항공 및 해상 드론, 보안 휴대전화 및 GPS 기기와 같은 상용 기성품(COTS) 장치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장에 도입해 활용하는 사례가 성과를 거두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을 비롯한 전 세계 군대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군이 사용하는 장비 중 일부는 바로 저렴하고, 공개적으로 구입할 수 있어 신속한 조달이 가능한 상용 기성품이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인들이 진군하는 러시아군의 탱크와 군대를 탐지하는 데 사용하는 드론은 원래 취미용품 매장 및 온라인에서 판매되던 제품이었다. 일부 상용 기성품은 제조품 또는 조립 부품과 결합하여 무기 및 기타 전쟁 장비가 된다.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의 상용 기성품 장치 사용에 주목하고 있다. 양국 모두 정보, 감시, 정찰을 위해 소형 원격 조종 드론을 배치하고 주요 목표물에 무기를 투하하고 있다. 한편, 상업용 GPS 장비는 잠재적인 전쟁 범죄 현장에서 적군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을 포함하여 적군을 찾고 추적할 수 있다. 사이버 장비는 적의 장비를 감시하고 심지어 무력화시킨다.
상용 기술 역시 기존 군사 장비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일례로 수집한 적군 위치 정보를 미사일로 목표물 타격에 사용할 수 있다. 미국 해병대 대령이자 미국의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마크 칸시안(Mark Cancian) 수석 고문은 포럼과의 인터뷰에서 “러-우 전쟁으로 군사 작전에서 상용 기성품을 활용하는 방안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며 “전선이 비교적 안정적인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이러한 기기를 설정하고 사용법을 익힐 시간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러한 환경에서는 민간 상용 기성품 장치 사용자(예:공중 드론 운영자)를 해당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군부대와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칸시안 고문은 “쿼드콥터(quadcopter) 드론을 띄우고 탱크 부대의 진군을 관찰하는 일은 흥미 있는 볼거리는 되겠지만 군사적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전장에서 상용 기성품 장비, 특히 드론이 사용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네덜란드에 본부를 둔 벨링캣(Bellingcat)의 2022년 1월 보고서에 따르면 이슬람국가(IS) 무장 조직은 2016년부터 테러 공격의 일환으로 무인항공기(UAV)를 사용하여 무기를 투하하기 시작했다. (벨링캣은 연구자, 조사관, 언론인으로 구성된 온라인 탐사 보도 매체이다.) 이 전술은 다른 곳에서도 활용되었다.
2021년 6월 테러리스트들은 무인 항공기를 사용해 파키스탄 국경 근처의 인도 공군 기지 건물에 소형 폭발물 2개를 투하했던 바 있다. 폭발로 인한 인명 및 재산 피해는 미미했지만, 이 사건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상용 기성품이 일방적으로 가할 수 있는 위력을 보여주며 전 세계 군에서 상용 기성품 장비 적용에 대응할 방법을 강구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이미 미국은 수십 년 전부터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민간 장비가 군사 용도로 사용될 경우 미칠 파급력을 인지했다. 1994년 당시 윌리엄 페리(William Perry) 미국 국방부 장관은 조달 지연과 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용 기성품을 “언제 어디서든” 배치할 수 있도록 할 것을 촉구했다. 이후 전 세계 방산업체들은 군사용 드론을 포함한 수많은 군용 제품에 상용 기성품 장치 및 그 기술적 특성을 통합해 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러한 기술이 전통적인 군사 장비와 함께 전장에서 어떻게 수행되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동맹국들과 파트너는 중국 공산당이 무력으로 타이완을 점령하려는 시도를 저지한다는 공동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2022년 9월 Vox 뉴스 웹사이트는 상용 기성품 장치로 첨단 군사 기술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고 밝힌 국방 정책 전문가이자 저자인 피터 싱어(Peter Singer)의 인터뷰를 전한 바 있다.
상용 기성품의 사용 및 잠재력
버마(미얀마)에서는 저항 단체가 2021년 2월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군사 정권에 대응하기 위해 상용 기성품 드론을 개조했다. 한 저항군 관계자는 2022년 2월 미국의 외교전문지인 ‘디플로맷(The Diplomat)’과의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비행 거리가 짧은 간단한 F11 드론으로 시작했지만, 이후 아마추어 장난감 매장에서 다른 모델을 개조하고 연습함으로써, 더 능숙하게 드론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밝혔다.
한편, 미얀마 군부는 반정부 시위를 해산하고 레이저 유도 미사일로 반군을 공격하는 등 군사용 무인 항공기를 감시·정찰 활동에 사용하고 있다고 디플로맷은 보도했다.
뉴질랜드 방위군(NZDF) 역시 상용 기성품 기술과 장비로 통신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고 브레이킹 디펜스(Breaking Defense)가 2022년 12월에 보도했다. 브레이킹 디펜스는 “상용 기성품 솔루션을 구매한다는 것은 뉴질랜드 정부가 값비싼 시스템 개발을 주도하는 대신 최신 기술 발전에 빠르게 적응하는 퀵팔로어(quick follower) 역할을 맡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군이 발행한 방호 마스크 및 의류와 함께 카메라가 장착된 상용 기성품 드론을 우크라이나에 보냈다고 교도통신이 2022년 4월 보도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방위성은 무인기를 군사 장비로 분류하지 않는다.
2022년 8월 애들레이드(Adelaide)에서 열린 육군 참모총장 심포지엄에서 사이먼 스튜어트(Simon Stuart) 호주 육군 중장은 개막 연설에서 혁신을 내세우며, 호주에서 무인 항공 시스템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관은 400대 이상의 다목적 항공기를 보유한 호주 육군이라고 밝혔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한국, 태국, 베트남의 군대도 상용 기성품 제품 및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물론 상용 기성품 장치가 모든 군사 작전에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상업용 무인 항공기(드론) 가운데 인도·태평양의 방대한 공해상 거리를 커버할 제품은 거의 없다. CSIS의 칸시안 고문은 이런 장치는 비교적 단거리 시나리오에서 훨씬 유용하다고 말했다. 대만은 향후 중국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상용 기성품 드론 및 기타 장비를, 필리핀은 남중국해 섬을 방어하기 위해 상용 기성품 장비를 배치할 수 있다.
상용 기성품이 갖는 강점
호주 멜버른에 본사를 둔 사이버 보안 기업인 드론섹(DroneSec)의 마이크 몬닉(Mike Monnik) CEO는 상용 기성품 장비를 “매장에 가서 바로 구입할 수 있는 제품”으로 정의한다. 드론섹은 아군 무인 항공기를 보호하고 악의적인 드론을 방어하기 위해 설계된 글로벌 지도 및 기타 소프트웨어 네트워크를 제공한다. 몬닉은 현재 여러 군용 및 보안용 드론에 사용되는 기술이 원래는 레저 및 상업적 목적으로 개발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메릴랜드 대학의 공공정책 및 민간기업센터(CPPPE)는 상용 기성품 장치를 “상업적으로 만들어져 일반 대중에게 판매, 임대되거나 라이센스를 제공할 수 있으며 조달 기관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정부 고유의 개조를 거의 또는 전혀 필요로 하지 않은 소프트웨어 또는 하드웨어”로 정의하며 “정부 예산을 투입하는 정부 자체 개발의 대안으로써 빠른 가용성, 저렴한 비용, 낮은 위험성을 지닌 상용 기성품 제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공공정책 및 민간기업센터는 2008년 9월 논문에서 “빠르게 발전하는 최첨단 기술 환경에서 더 이상 군이 군수 장비 개발에 대한 독점권을 지니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메릴랜드 대학 연구진은 “상용 기성품 솔루션을 구현할 경우, (정부 및 계약업체의) 시스템 개발팀 업무와 운용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사례가 많기에 (이들이) 상용 기성품을 수용하고 사용하기를 꺼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평가했다.
전통적으로 군은 다양한 전투 조건에서 작동할 수 있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성능이 입증된 견고한 군사 장비를 선호하는데 많은 상용 기성품 장치의 일회성 특성은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칸시안 고문은 지적했다. 그는 “상용 기성품 장치는 사서 한두 번 사용한 후 버리는 일회성 기기로 접근하기 쉽다”며 “그러다 보니 예산이 빠듯한 조직에 매우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상업적으로 사용 가능한 장치를 전장에서 활용하면 군에서는 수년까지 소요되기도 하는 번거로운 조달 절차 없이 신속하게 위협에 대처할 수 있다. 반대로, COTS 회의론자들은 군사용으로 제작된 제품에 대해 엄격한 검토가 수반될 때에만 해당 요구 사항과 성능 기대치를 충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군사 사양에 맞게 제작된 장치는 초기 배치 이후에도 작동 가능한 상태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상업용 소프트웨어가 군사용으로 개조될 때 보안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무인 항공기 및 보안 휴대 전화와 같은 상용 기성품 장치는 약간의 개조 작업만 거친다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위성 영상 및 사이버 장치와 같은 기타 기술은 군사 장비 위력을 높일 수 있다.
러시아 침공 후 불과 몇 주가 지난 2022년 2월 말
AP통신은 우크라이나에서 한 때 결혼식 사진을 찍거나, 작물 수확을 위해 꽃가루를 수정하거나, 스포츠 경주를 벌였던 드론 마니아들이 이제 러시아군 격퇴를 돕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다고 보도했다. 민간인들은 드론으로 적의 호송대를 추적하고 우크라이나군에 정보를 전달한다.
몬닉 CEO는 포럼과의 인터뷰에서 상용 기성품 장치는 잠재적으로 전략적, 심리적 이점도 가진다며, 일례로 무인 항공기가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소리만으로 적군을 불안에 떨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상용 기성품 장치 유형
또한 상용 기성품 제품은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하고 구조 임무를 수행하며 불법·비보고·비규제(IUU) 어업과 같은 불법 활동을 감시하는 데에도 사용될 수 있다. 무인 항공기 외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상용 기성품 장치는 다음과 같다.
• 해군 드론 또는 다목적 무인 수상함: 우크라이나는 항구, 도시, 상업 항로를 방어하기 위해 무인 수상함을 출항시켰다. 장갑(armored) 카약처럼 생긴 길이 5.5m의이 수상함은 정찰 감시용으로 사용되며 폭발물을 장착할 수 있다. 씨두 엔진(Sea-Doo)을 포함한 선박 부품의 상당수는 상용 제작된다. 우크라이나는 이러한 무인 수상함으로 구성된 함대를 구축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다. 2022년 12월 이코노미스트지는 수상함 개별 가격은 약 3억 2,200만 원(미화 25만 달러)로 대함 미사일 비용과 비교해 매우 저렴하다고 보도했다.
• 사이버 장비: 훈련을 강화하고, 모니터링을 가능하게 하며, 적의 통신 장비를 비활성화할 수 있는 상용 컴퓨터, 시뮬레이터 및 기타 정보 기술.
• GPS 기술 및 레이더: GPS 기술 및 레이더 기술을 통해 군대는 적군의 위치, 움직임 및 능력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
향후 전략
상용 기성품 장치가 전통적인 군사용 하드웨어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겠지만, 여러 전장에서 보조 장비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입증되었다. 우크라이나, 미얀마 및 기타 지역에서 그 효과에 대한 증거가 축적됨에 따라 각국 군대 역시 상용 기성품 장치 사용 문제를 고려해볼 수밖에 없다.
상용 기성품 장치는 특히 비대칭 전쟁(asymmetric warfare)에 적합하며, 상대적으로 장비가 열세인 군대는 상용 기성품 장비로 전통적인 전투 개념을 보완하며 규모가 큰 적군 병력의 취약점을 이용할 수 있다.
2022년 4월 밀리터리 임베디드 시스템즈(Military Embedded Systems)지는 “상용 기성품 구성 요소를 사용하여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점은 전반적으로 낮은 비용, 더 큰 가용성, 더 신속한 납품”이라고 보도했다. 해당 매체는 “군용 이외 등급 기술은 항상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공급업체 선택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며, “상용 등급 부품 및 시스템의 안정성이 크게 강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비용이 저렴하다고 해서 상용 기성품의 품질까지 낮으리라는 가정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