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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선박들, 제재 품목인 석유 밀수에 동원

포럼 스태프

유조선 파블로(Pablo)호의 대규모 폭발 사건으로 제재 품목인 원유나 디젤, 제트 연료와 같은 정제유를 수송하는 “암흑 선단(dark fleet)”이 주목을 받고 있다. 파블로호는 석유 불법 운송에 동원된 최초의 선박이다. 서방 국가들이 이란, 베네수엘라에 이어 최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금지 및 제한하자 이러한 석유 불법 환적에 동원된 선박은 600척 이상으로 증가했으며, 이 중 대부분은 선박으로서의 황금기가 수 년 이상 지난 노후 유조선이다.

2023년 5월 1일 말레이시아의 풀라우 팅기(Pulau Tinggi) 섬에서 40해리 (75km) 떨어진 남중국해 상에서 가봉 선적의 파블로호에서 폭발과 화재가 발생하여 선원 3명이 실종되고 나머지 25명은 구조되었다. 실종 선원들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선박 갑판의 대부분이 파괴될 만큼의 폭발이 일어난 원인은 불분명하다. 해당 선박을 소유한 기업은 마샬 제도에 등록되어 있으나 그 기업의 소유주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파블로호는 구조 작업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보험 기록이 전혀 없었다. (사진: 2023년 5월 초 남중국해에서 폭발하여 불타버린 파블로호의 잔해.)

당국과 해운업계는 주요 산업국 7개국 G7과 유럽연합(EU) 및 호주가 러시아산 원유와 정제유에 가격 상한제 및 수입금지 조치를 시행한 이후 제재 품목인 석유 불법 수송 관행이 급격히 증가했고 이러한 목적으로 암흑 선단이 형성되면서부터 이와 같은 사고를 우려해왔다. 5월 초 싱가포르의 더 스트레이트 타임스 신문은 중국에서 하역한 파블로호의 적재 공간 대부분이 비어있는 상태였으나 선박의 최대 적재량인 70만 배럴 가량의 원유가 채워져 있었다면 사고 규모는 더 심각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싱가포르의 웹사이트 스플래시 247(Splash 247)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해안으로 떠내려온 기름은 파블로호의 파열된 연료 탱크에서 흘러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운송 모니터링 기관 프레이트웨이브(FreightWaves)에 따르면 서방 국가들의 제재 대상인 석유의 대부분이 인도와 중국으로 흘러 들어간다. 러시아는 유럽 발 제재가 시작되며 장거리 수송이 가능한 유조선이 더 많이 필요해졌기 때문에 이란, 베네수엘라와 함께 암흑 선단을 놓고 경쟁하기 시작했다. 2023년 1월 말 해운 통신사 트레이드윈즈(TradeWinds)는, 암흑 선단이라는 별칭이 해당 선박의 선장들이 탐지를 피하기 위해 자동 식별 시스템(AIS) 트랜스폰더를 끄고 운행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보도했다. 트레이드윈즈는 보통 이런 선박들은 이름을 바꾸는 경우가 많으며, 규제가 느슨하기로 알려진 국가에 등록된 경우가 많다고도 덧붙였다.

대부분의 해상 유조선의 수명은 약 15년이지만, 암흑 선단의 선박들은 이보다 더 노후한 경우가 많다. 일례로 파블로 호는 1997년에 건조된 선박이다. 이들 중 정기 안전 검사를 받는 선박도 소수에 불과하다.

E.A. 깁슨 쉽브로커즈(Gibson Shipbrokers)의 연구소장 리차드 매튜스(Richard Matthews)는 2023년 3월 초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 노후 선박들은 전부 표준 관리 상태를 벗어나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암흑 선단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대규모 유출 사태나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파블로호 역시 암흑 선단 선박의 특징들을 갖고 있었다. 2023년 5월 초, 해운 뉴스 매체인 로이즈 리스트(Lloyd’s List)는 “국기, 클래스, 등록 소유자 및 선박 명칭의 잦은 변경은 사상자 발생이 시간 문제였을 뿐이라는 것을 규제 기관과 해운업계에 알리는 경고 신호였다”고 보도했다.

프레이트웨이브는 노후 유조선들은 더 많은 오염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운항 안전성도 떨어진다고 밝혔다. 이전에는 대부분의 노후 선박들이 해체되어 고철로 사용되었고, 더 효율적인 새로운 선박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었다. DHT 홀딩스(DHT Holdings)의 CEO 스베인 목스네스 하르피엘(Svein Moxnes Harfjeld)은 2023년 2월 초 프레이트웨이브와의 인터뷰에서, 그림자 선단(shadow fleet)이라고도 불리는 암흑 선단의 선박들은 “새로운 고철 사용 방식으로도 볼 수 있다”며, “만약 200만 배럴의 석유를 실은 대형 유조선이 싱가포르 해협이나 서인도 연안, 아라비아만 한복판 등 거주지역 가까운 곳에서 [사고를 당한다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방 제재로 인해 서방 소재의 기업들은 G7이 주도하는 연합의 가격 상한선을 준수하는 경우에 한해 러시아나 기타 제재 대상 석유 제품을 인도하거나 해당 제품에 보험을 제공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제한 사항 때문에 글로벌 석유 수송은 “러시아산 석유 수송을 전혀 하지 않거나 거의 러시아산 석유 수송만 하는 경우로 나뉘게 되었다”고 리차드 매튜스 연구소장은 앞서 말한 CNN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수년간 이어진 코로나19 제한 조치가 해제되면서 중국 내 대규모 제조업 재가동을 위한 에너지 자원의 필요 등 전세계적으로 석유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암흑 선단의 해상 왕래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CNN은 현재 암흑 선단 선박들은 전세계 유조선의 약 10%를 차지하며, 이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2023년 5월 중순 탐사 보도 네트워크 벨링캣(Bellingcat)은 국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내 세바스토폴에 위치한 아블리타 곡물 터미널에 선박들이 드나드는 모습이 위성 사진과 전파 탐지기에 촬영되었다고 보도했다. 해당 선박들은 흑해 항구에 접근하기 전에 자동 식별 시스템의 트랜스폰더를 끄는 것으로 보인다. 출항 이후에는 선박 간 화물 이송으로 곡물의 출처 추적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벨링캣은 덧붙였다.

 

사진 제공: 말레이시아 해양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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