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 B 폴링(Gregory B. Poling), 타비사 그레이스 말로리(Tabitha Grace Mallory), 해리슨 프레탯(Harrison Prétat), 고등국방연구소
중국은 2016년 스프래틀리제도 내 인공섬에 전초 기지를 완공하면서 남중국해 전역의 평화 활동에 대한 통제권을 주장하는 쪽으로 초점을 전환했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 요소는 중국 공산당의 해양 민병대 확대다. 해양 민병대 선박은 표면적으로 상업 조업에 참가하지만 영유권 분쟁 해역에서 중국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중국 사법 기관 및 군과 함께 활동한다.
랜드사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가 인민군 해양 민병대라고 부르는 이 조직은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주권 주장을 강화하는 중국의 전략에서 맡은 바 역할이 있다. 해양 민병대는 다른 선박에 대한 벌떼 전술 등의 전술을 사용하여 다른 국가의 합법적인 주둔과 영유권에 도전한다.
스프래틀리제도 내 중국의 전초 기지 인근에서 해양 민병대 선박은 중국 사법 기관과 협력하여 중국이 이른바 9단선이라는 명목 아래 모호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널리 거부되고 있는 지역 내에서 동남아시아 영유권 주장국의 조업과 탄화수소 활동을 방해하고 있다. 중국은 해양 민병대의 상업 어선단이라는 표면적인 정체성을 활용하여 의혹 제기시 강력하게 이를 부인하고, 거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 해양 민병대를 통해 영유권 주장국을 압박할 수 있다.
해양 민병대의 회색 지대 전술은 강압이 국제법에 근거한 해양 질서를 방해하거나 분쟁의 관리나 평화적인 해결에 영향을 주는 것을 막는 데 관심이 있는 국가에 중대한 도전이 되고 있다. 다른 영유권 주장국은 중국 선박의 수와 양에 대적할 해양 역량이 부족하다. 해양 강압을 방지하는 데 관심이 있는 다른 강대국은 역량이 떨어지는 해군 장비만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고 이를 표면적으로는 어선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은 선박에 사용할 경우 상황을 악화시키고 실용적이지 못할 수 있다.
영유권 분쟁 해역에서 공세적인 행동을 막고 분쟁 위험을 낮추기 위해, 본 분석은 중국 해양 민병대의 불확실성과 사실 부인의 특성을 드러내는 데 주력한다. 분석 결과는 해양 민병대에 대한 포괄적인 개요를 제공하여 남중국해의 영유권 분쟁 해역에서 활동하는 중국 어선 대부분의 목적이 상업적이 아니라 정치적이라는 것을 밝힌다.
그러나 영유권 분쟁 해역에서 활동하는 행위자의 오픈소스 중국어 연구, 원격 감지 데이터, 해양 순찰은 해양 민병대를 노출시키고 회색 지대 전력으로서 해양 민병대가 갖는 효력을 줄이는 힘을 갖는다.
중국 해양 민병대의 어제와 오늘
현대에 중국이 해양 민병대를 사용한 것은 베트남으로부터 파라셀제도를 빼앗기 위해 어선을 사용한 19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5년 하이난성 탄먼 마을의 해양 민병대 창설과 1988년 스프래틀리제도에 중국의 첫 번째 기지 건설 등 1980년대의 여러 사건이 해양 민병대가 그후 수십 년 동안 활발히 활동하는 초석이 됐다.
해양 민병대는 2000년대에 공세 가담을 늘리며 여러 미국 해군 함정의 항해를 물리적으로 방해했다. 이러한 상황은 2012년 중국이 스카버러사주를 점령할 때는 물론, 2014년 베트남 해역에 중국 석유 시추선을 배치할 때 해양 민병대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2010년대 초반까지 계속됐다.
2016년 이후 해양 민병대 선박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지속적으로 스프래틀리제도에 배치됐다. 해양 민병대는 말레이시아 및 베트남과 여러 석유 및 가스 대립 시 중국 사법 기관과 함께 행동하고, 대상 지역의 대규모 배치에 참가했다. 가령, 2018년 필리핀이 점령한 티투섬 인근에 약 100척이, 2021년 초 사람이 살지 않는 휘트선암초에 약 200척이 집결했다.
남중국해의 해양 민병대는 중국의 광둥성과 하이난성에 위치한 10개의 항구에서 활동한다. 원격 감지 데이터에 따르면 스프래틀리제도에는 해양 민병대 선박 약 300척이 항상 활동하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활동하는 중국 해양 민병대 선박은 대부분 전문 해양 민병대 어선과 스프래틀리 백본 어선의 두 종류로 분류된다. 전문 해양 민병대 어선은 해양 민병대 업무 전용 기금에 따라 설계, 조직, 개조 또는 운영된다. 반면 스프래틀리 백본 어선은 길이, 배수량, 출력 요건을 충족하는 중국의 국내 어선으로 이루어진 하위 집단으로, 이들은 중국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스프래틀리제도에서 활동한다.
전문 선박은 일반적으로 명백한 군사적 특징을 포함하는 규격에 따라 제작되지만 스프래틀리 백본 어선도 강철 선체로 구성되고 길이도 최소 35미터이며 55미터를 넘는 경우도 많다. 전문 해양 민병대와 스프래틀리 백본 어선은 모두 중국의 주권을 주장하기 위해 대규모로 배치되어 다른 나라 선박의 접근을 거부하지만, 중국측 관계자의 진술에 따르면 더욱 공세적인 작전에는 전문 해양 민병대 선박이 우선 사용된다.
중국 해양 민병대 활동은 여러 국제법 원리를 위반한다. 배타적 경제 수역 내에서 다른 영유권 주장국들의 합법적인 활동을 불법적으로 차단하는 노력은 유엔해양법협약과 관습 국제법에 위배되는 것이다. 다른 선박과의 충돌 위험을 발생시켜 상대 선박을 방해하려는 불안전한 기동은 국제해사기구의 해상충돌방지규정을 위반한다.
해양 민병대 선박 식별
해양 민병대 활동을 가장 간단하게 식별할 수 있는 방법은 여전히 중국의 공식 자료나 국영 매체의 보도 내용을 통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해양 민병대 선박을 이런 식으로 파악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기 때문에, 해양 민병대의 지속적인 확인에는 원격 감지 데이터와 전통적인 현장 보고가 뒷받침하는 행동 기반 식별이 가장 유망하다.
현장 사진과 동영상은 물론 선박자동식별시스템의 데이터 컬렉션은 해양 민병대 선박을 직접 식별하고 행동을 기록하는 데 강력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이는 후속 연구 기회를 주고 해양 민병대의 규모, 범위, 활동을 광범위한 청중에게 공개하여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상업 위성 사진과 선박자동식별시스템 데이터는 해양 민병대 배치를 식별하고 추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알려진 해양 민병대 선박과 항구를 연계하는 것은 대규모 정부 보조금이 스프래틀리 백본 어선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박의 강력한 지표로서 추가 연구를 보증한다. 특히 승조원 10명 미만의 영유권 분쟁 해역에서 활동하는 50미터 이상의 선박도 추가 조사해야 한다.
남중국해의 행위자가 제공하는 지속적인 보고 노력과 오픈소스, 중국어 자료, 원격 감지 데이터를 사용한 추가 연구를 연계하면 해양 민병대를 완벽하게, 또 현실적으로 식별할 수 있다.
남중국해에서 해양 민병대 활동
지난 10년 간 국제 관심이 남중국해로 옮겨가기 전, 중국 해양 민병대는 서방 학계의 주요 초점이 아니었다. 해양 민병대의 사용과 구성은 지난 10년 간 변화하고 확대됐다. 해양 민병대가 최근 여러 사건에 개입됐다는 국제 언론의 보도로 학계의 관심이 증가하며, 해양 민병대가 최근 현상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해양 민병대를 처음 사용한 것은 적어도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후 해양 민병대는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 10년간 중국이 9단선 내 해역을 장악하려고 전례 없이 노력함에 따라, 2016년 국제재판소가 중국의 영유권 주장에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음에도 불구하고 해양 민병대의 규모와 활동은 그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확대됐다.
시진핑(Xi Jinping) 중국 주석이 이끄는 해양 민병대가 중국의 더욱 공격적인 남중국해 전략에서 선봉이 됐다는 첫 징후는 2014년 5월에 나타났다. 같은 달, 베트남은 파라셀제도를 지나는 석유 시추선 하이양 시유 981호와 서비스 선박 3척을 발견했다. 석유 시추선은 확실한 영유권 분쟁 해역인 베트남의 리손섬에서 동쪽으로 120해리(220킬로미터), 하이난에서 남쪽으로 180해리(333킬로미터) 지점에 정박했다. 중국 해양안전국은 8월 중순까지 석유 시추선이 해당 지역에서 탐사 시추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베트남은 즉시 사법 기관 선박 6척을 출동시켜 석유 시추선의 작업을 막았다. 중국은 40척의 인민해방군 해군, 해안경비대, 민병대 선박으로 구성된 전력으로 이에 대응했다. 석유 시추선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는 인민해방군 해군이, 베트남과 접촉 가능성이 높은 가장 먼 곳에는 해양 민병대가 배치되어 동심원을 구성했다.
양측은 총을 발사하지는 않았지만 의도적인 충돌과 고압 물대포 등 방식의 폭력을 많이 사용했다. 2014년 5월 중순 베트남은 중국이 해당 해역에 선박 130척을,
중국은 베트남이 60척을 배치했다고 주장했다. 베트남은 수적으로는 물론 성능 면에서도 열세였다. 중국 해안 경비대 함정은 베트남 함정보다 크고 무장이 우수했다. 또한 대치 상태에 동원된 선박 중 다수를 차지했던 중국의 대형 강철 선박은 베트남의 목재 선박을 압도했다. 중국 선박과의 충돌로 베트남 어선이 침몰했지만 승조원은 구조됐다.
중국 어선은 조업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스프래틀리제도 내 다른 영유권 주장국의 전초 기지 주변에 정기적으로 집결한다. 2019년 3월과 4월에 해양 민병대 선박이 필리핀령 로이아타섬과 로이아타암초에서 1킬로미터 내에 정박한 모습이 정기적으로 포착됐다. 아시아 해양 투명성 이니셔티브와 벌칸 스카이라이트 해양 이니셔티브의 연구에서도 중국 해양 민병대 선박이 특히 스프래틀리 유니언 뱅크 구역 근처에 자주 집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선박 중에서도 휴즈 및 존슨 암초의 중국 전초 기지 인근에서 활동하고, 콜린스, 랜즈다운, 그리어슨암초와 신 코우섬에 접근하며 도발한 유에 마오 빈 유 선단의 9척이 특히 두드러졌다. 이들 선박은 유니언 뱅크에 집중하는 중국 해양 민병대의 선봉인 것으로 보인다.
이때까지 중국 해양 민병대와 다른 행위자 간 폭력은 위험한 기동과 가끔 발생하는 충돌 수준이었다. 하지만 2019년 6월 필리핀 어부가 사망 직전까지 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유에 마오 빈 유 42212호는 밤에 리드 뱅크에서 정박 중이던 F/B 젬-베르와 충돌하여 침몰시켰다. 중국 선박은 충돌 후 불을 끄고 도망쳐, 필리핀 선박의 어부를 익사하게 내버려둔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지나가던 베트남 선박이 어부를 구조했다. 유에 마오 빈 유 42212호가 해양 민병대 선박인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아시아 해양 투명성 이니셔티브와 고등국방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이를 입증하는 상당한 증거가 발견됐다. 본 분석 결과도 그를 강력히 뒷받침한다.
해양 민병대는 최근 석유 및 가스 대치 상황에도 참가했다. 해양 민병대는 2019년 말과 2020년 초,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해역에서 각각 수개월에 걸쳐 중국 해안 경비대와 함께 중국 국립 조사선 하이양 디쯔 8호의 활동을 호위했다. 이 사건에 관련된 선박이 정확히 모두 몇 척이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선박 40~80척이 참여했고, 해안 경비대와 인민해방군 해군도 있었지만 해양 민병대가 주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해양 민병대의 최근 기록에 따르면 스프래틀리제도의 배치 패턴은 여러 번 진화를 거쳤다. 2017년 말과 2018년말 사이, 스프래틀리제도에 상시 배치된 해양 민병대 선박의 수는 약 300척으로 증가했으며 이들 중 대부분은 수비 및 미스치프암초의 항구에 한 번에 몇 주씩 정박했다. 2018년 12월 후 해양 민병대는 더욱 넓게 퍼져 티투섬 주변에 가장 많이 집결했다. 2020년 초 해양 민병대는 휘트선암초를 중심으로 유니언 뱅크에 대규모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선박 수는 2020년 5월에 100척에 도달한 후 감소했다가, 이후 2020년 말에 다시 200척에 근접할 정도로 대폭 증가했다.
스프래틀리제도 내 해양 민병대는 2021년 4월 이후 감소한 후 유동적인 변화를 보였으나 더 작아지지는 않았다. 같은 달에 휘트선암초의 선박 대부분이 인근 휴즈암초로 이동하며 그곳의 선박 수가 150척을 넘었다. 또한 상당수의 선박도 중국의 게이븐암초 기지와 베트남의 나미이트섬 기지를 포함하는 북쪽의 티자드 뱅크로 이동했다. 2021년 5월 휴즈암초의 거의 모든 선박이 티자드 뱅크로 이동하며 그곳의 선박 수가 230척을 넘었다. 한 달 후 선박 대부분이 유니언 뱅크로 복귀하여 휴즈암초 주변에 머물렀다. 2021년 6월 중순까지 휴즈암초 주변에는 약 240척, 게이븐암초 주변에는 70척의 선박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2018년 8월 이후 해양 민병대 선박 약 300척이 스프래틀리제도 주변에 대규모로 배치되어 중국의 인공섬에서 물류 지원을 받고 있지만 해당 항구에 더 이상 정박하지는 않고 있다.
전문 해양 민병대 어선과 스프래틀리 백본 어선 비교
전문 해양 민병대 어선과 스프래틀리 백본 어선은 영유권 분쟁 해역에서 중국의 주권을 주장하고, 특히 최근에 대규모로 집결하여 다른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국 어선의 어장과 암초 접근을 거부하는 등 종종 동일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들의 역할에는 차이점이 있다. 2017년 타이산시 해양수산부는 스프래틀리 백본 어선 소유주와 회동하고, 그들에게 “특별 지정 해역”에서 활동하며 “국가 해양권과 국익을 지키고 주권을 선언”하는 “정치적 책임”을 상기시켰다. 같은 자리에서 스프래틀리 백본 어선 소유주들이 주요 대외 사건을 일으키지 말라는 지시를 받음에 따라, 어선 충돌, 외국 군함의 항해 방해 또는 기타 물리적 충돌 같은 더욱 공격적인 활동은 주로 전문 해양 민병대 어선에 부여된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었다.
전문 해양 민병대 어선에 더 큰 책임이 부여된 것은 무기 저장 시설과 대형 물대포 등의 기능을 포함하는 이들 어선의 설계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하지만 스프래틀리 백본 어선도 군사 작전과 통합을 위한 잠재 능력을 유지한다. 광둥성 어업 전문 협동조합이 소유한 스프래틀리 백본 어선의 고용 계약에 공개된 바와 같이, 어선은 연중 특수 해역에서 활동하고 정박하며, 훈련 및 주권 방어에 참가하고, 전투 중 필요 시 인민해방군을 지원해야 한다. 또한 승조원은 선박이 정박하는 스프래틀리제도 내 중국 전초 기지의 항구나 선박 내부 구조물을 선장의 허가 없이 촬영할 수 없다. 스프래틀리 백본 어선에는 전문 해양 민병대 어선과 상이한 유형의 정부 지원이 제공된다.
공식적으로 명명된 해양 민병대 선박과 스프래틀리 백본 어선이 이렇게 명확히 구분됨에 따라,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 중국은 이를 강력히 부인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스프래틀리 백본 어선에 주어진 전투 중 인민해방군 지원 의무와 중국의 주권 수호 시 명백한 정치적 책임과 역할을 고려하면, 스프래틀리 백본 어선은 합리적인 군대 정의에 명확히 부합한다.
군사 활동의 오픈소스(Open-Source) 확인
이러한 분석 결과는 지금까지 중국 해양 민병대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가로막았던 수많은 의심을 잠재울 것이다. 해양 민병대는 비밀이 아니다. 공개적으로 입수 가능한 수많은 중국 정부 문서, 언론 보도, 학술 논문, 기타 자료에서 해양 민병대가 공개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해양 민병대는 무기 저장 시설 등의 군사 기능을 갖춘 선박에서 활동하는 군인인 전문 민병대는 물론, 스프래틀리 백본 어선처럼 영유권 분쟁 해역에서 중국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채택, 개조 또는 제작된 크고 강력한 민간 어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의 활동은 현지 행위자에게 군사 규격에 부합하는 선박을 건조하고 필요시 영유권 분쟁 해역에서 중국 사법 기관과 해군을 즉시 도울 수 있도록 장려하는 정부 보조금을 통해 중국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는다. 민병대 선박 배후의 기업 구조는 최종 소유자를 숨기기 위해 복잡하게 설계되어 있지 않고, 단순하고 직접적이며, 선박이 귀환하는 곳의 현지인과 연결되어 있다. 하이난성의 전문 기업이 운영하는 전문 선단을 제외하고 해양 민병대 선박의 소유권은 많은 기업 사이에 분산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해양 민병대의 전반적인 탈중앙화 특성을 반영하며, 지난 10년 동안 대규모 정책 장려금이 보낸 신호에 반응한 현지 단체와 기업이 관련되어 있다.
해양 민병대 선박을 확실히 식별하는 수단으로 중국 정부 기관과 기업의 관련성은 불완전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특히 다른 해양 민병대 지표가 있을 경우 그러한 관련성을 가진 선박을 조사할 가치가 있다.
이 기사는 2021년 11월 전략 및 국제학 연구소의 아시아 해양 투명성 이니셔티브와 고등국방연구소가
《중국 해양 민병대의 장막 거두기》라는 제목으로 처음 발표한 보고서를 포럼 형식에 맞게 편집한 것이다. 보고서 전문 참조 주소: https://www.csis.org/analysis/pulling-back-curtain-chinas-maritime-militia
과거와 현재의 가려진 항해
오늘날 중국군에 의한 해양 확장은 15세기 명나라 시대에 인도 태평양을 건너 아프리카로 떠났던 정화의 항해를 연상시킨다. 정화는 중국 해군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물로서, 몽골제국의 변방에 위치했던 윈난 지역에서 현재 위구르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중앙아시아의 무슬림 가문에 태어났다.
명나라 군대는 어린 정화를 붙잡아 환관으로 만들고 향후 영락제가 되는 연왕의 시중을 들게 했다. 이후 영락제는 반란을 일으켜 정당한 황제인 조카를 폐위시키고 황위를 차지하여 최고 권력자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정당성 문제가 발생했고 영락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검열과 정치 선전을 사용했다. 그는 전 황제의 기록을 폐기하라고 명령하고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해 정치 선전을 도입했다.
이 시대의 가장 잘 알려진 대표적인 정치 선전은 보선, 즉 “보물선”의 형태로 나타났으며 그중 일부는 당시까지 건조된 선박 중 가장 놀랍고 거대한 목선이었다. 중국 기록에 따르면 보물선의 길이는 120미터를 넘었으며, 이는 축구장보다 긴 길이다. 보물선은 수백 척 선박의 지원을 받았는데 여기에는 말 수송선, 물 수송선, 무기고선, 갑판에 흙을 깔고 감귤 나무를 심어 수천 명의 병사와 선원들에게 건강한 식생활을 보장한 선박도 있었다.
중국의 정치 선전은 정화 원정대를 15세기 일대일로 캠페인처럼 중국의 자애로운 국제 우호와 윈윈 협력의 대표적인 예로 묘사하지만 실상은 그처럼 간단하지 않다.
정화 원정대의 진짜 목적은 영락제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중국 역사에서 정치적 정당성은 사대 제도와 맞물려 있다. 중국인이 아니라면, 중국의 조공제도를 무역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에 따르면 종속국들은 황제에게 그들 나라의 값진 물건과 이국적인 동물을 조공으로 바쳐야 했고, 황제는 이에 대한 답례로 비단, 차, 도자기 같은 값비싼 중국 제품을 하사했다. 중국 정부는 조공제도를 황제의 우월한 정치적 권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간주하지만 다른 국가들은 보통 중국과의 특이한 무역 의례로 여긴다.
사람들은 중국의 고대 조공제도 그리고 현대의 중국 정권과 일대일로 정책의 신뢰성을 구축하기 위해 시진핑(Xi Jinping) 중국 주석의 주도 아래 만들어진 국제 협력용 일대일로 포럼을 많이 비교한다.
항구에 당도하여 황제의 선물을 공개하는 정화 함대는 눈부시게 화려한 광경을 연출했다. 정화는 중국으로 돌아오며, 방문국의 현지 농산물, 정부 관료 또는 왕족을 중국에 데려와 황제에게 절하게 하고 전 세계 백성들이 영락제를 “천하”의 합법적인 통치자로 인정했다고 황제에게 보고했다.
정화는 쿠빌라이 칸과 같은 이전 황제들에게 공물을 바쳤던 지역 통치자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일부 인도 태평양 지도자들이 조공제도에 참여하기를 원치 않자 정화 함대는 인도네시아 통치자를 납치하고 스리랑카 왕국을 무너트리는 등 군사 분쟁과 정치 간섭을 자행했다.
정화 함대는 중국의 기술, 항해, 경제, 군사력을 과시했지만 중국은 함대에 너무 많은 비용이 소요되고 관료들이 비용에 비해 정치 선전 효과가 떨어진다고 주장하자 함대를 폐기했다. 함대는 중국이 경이로운 것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지만 때로 선물에는 위험이 숨어 있다. 때로 대부분의 세계에서 무역이나 외교로 여겨지는 것들이 중국에서는 공물이나 복종으로 간주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