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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태평양 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일본의 관점

가네하라 노부카쓰(Kanehara Nobukatsu)/도시샤대학교

사진: AP 통신

현재, 인도 태평양에서 현대 역사상 처음으로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부상하고 있다. 이 지역 사람들 대부분은 서구인과 일본인 대부분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많은 인도 태평양 국가들은 식민지 시대를 겪었고 국민들은 인종 차별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이들 국가는 자랑스럽게 독립을 선언했지만 일부는 자유를 위해 싸워야 했고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독립 직후 이들 국가들이 서구식 민주주의를 높이 평가한 것만은 아니었다. 공산주의 독재 체제로 변한 러시아를 제외하고 주로 이들은 민주주의 국가의 식민지였기 때문이다. 해방된 국가와 영토는 베트남의 공산주의, 인도네시아, 미얀마, 한국, 타이완의 군사 독재, 필리핀의 포퓰리즘 독재 같은 다양한 독재 체재를 시도했다. 억압적인 정권이었지만 일부는 화려한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 냉전이 끝나기 직전인 1980년대에 인도 태평양 국가 중 일부는 하나씩 민주주의로 전환했고 현재 자유 진영의 자랑스러운 회원이 됐다.

이 지역에는 세계 인구의 60퍼센트가 살고 있으며 곧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60퍼센트를 차지할 것이다. 이는 불가피하고 역사적인 필연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 혁명으로 세계는 영구히 바뀌었다. 현재 이러한 경제 변화의 조짐은 첨단 산업 민주주의라 불린다. 이제 산업화의 물결이 아시아 대륙을 강타했다. 중국과 인도는 규모와 힘 덕분에 세계 정치와 세계 경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개방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국제 체제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중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 대국이 됐다. 불행히도 현재 중국은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 도전하며 자국만의 국익을 추구하려 한다. 중국 공산당은 독재 정권으로 살아남아 인도 태평양을 지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서방은 중국 공산당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인도 태평양 지역은 서방이 인도 태평양에 자유주의 질서를 확장할지 혹은 중국에 인도 태평양 전체가 넘어갈지 결정하게 될 중요한 분수령을 앞두고 있다.

중국은 어떻게 부상했는가

1945년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한 후, 미국은 부패한 당시 중국 국민당과의 협력을 중단했다. 소련의 공산주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은 중국 공산당 지도자 마오쩌둥(Mao Zedong)이 중국을 차지할 수 있도록 신속히 도움을 늘렸다. 그렇게 소련과 중국 사이의 짧은 허니문이 시작됐다. 마오쩌둥은 1949년 중국을 건국했다. 중국은 공산주의 혁명을 추구하는 당 내 한 조직의 총끝에서 탄생했다. 인간의 존엄성, 양심, 자유, 종교는 모두 혁명을 위해 거부됐다.

1950년대 중국의 농업 경제를 산업화하려 했던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은 수천 만 명이 아사하며 대실패로 끝났다. 대약진운동 기간 동안 마오는 일부 당 지도자들로부터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지위를 공고히 하고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문화대혁명을 시작했다. 문화대혁명을 통해 홍위병으로 알려진 청년들은 잠재적 정적과 마오쩌둥이 통제하는 중국 공산당의 이념과 어긋나는 사상들을 제거했다. 마오쩌둥은 혼란 속에서 통치권을 유지하며 사실상 개인 우상화를 실시했다.

전 세계 정부 유형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한 후 니키타 흐루쇼프(Nikita Khrushchev)는 소련의 지도자가 되어 서방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시작했다. 권력 중심의 마오쩌둥은 러시아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1969년 그는 시베리아의 러시아 중국 국경에 있는 우수리강 다만스키섬에서 군사 충돌을 일으키고 영토를 차지했다. 하지만 소련군은 마오쩌둥의 추가 러시아 진출 시도를 격퇴했다. 약해진 마오쩌둥은 일본, 미국과의 관계를 시작하려 했고, 이는 중국을 소련으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일본과 미국에게는 전략적으로 이득이었다.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한 후, 그의 후임자 덩샤오핑(Deng Xiaoping)은 구 공산주의 수호파와 개혁파 사이의 균형을 이루려 했다. 그는 중국을 개방하여 외국인 투자와 기술을 받아들이고 경제 개혁을 단행했다. 일본은 중국과 관계를 정상화한 후 현재 가치로 수십조 엔에 달하는 개발 원조를 제공했다.

1989년 냉전이 종식되면서 동유럽 전역, 코카서스, 중앙아시아의 공산주의 정권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전 세계가 자유 진영의 승리를 축하했고 자유주의적인 분위기가 빠르게 확산됐다. 이러한 변화에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경악했다. 이에 대해 덩샤오핑은 후에 자신의 오른팔로 삼은 개혁파 후야오방(Hu Yaobang)을 지지하며 민주주의를 외면했다. 이 사건으로 1989년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자유를 촉구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일어났고 이는 이후 인민해방군의 대규모 민간인 학살로 이어졌다. 그러나 덩샤오핑은 외국 자본과 기술을 계속 받아들였고, 일본은 덩샤오핑이 개혁의 유일한 희망이고, 서방이 중국을 마오쩌둥 시대의 극단적인 고립주의로 몰아넣지 말아야 한다고 믿으며 톄안먼 광장 학살 이후에도 지원을 계속했다. 결국 중국은 계속 서방으로 기울었다.

중국은 서방의 개방 체제를 활용했고 21세기에 성공적인 경제로 부상했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이 언젠가 서방과 같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씁쓸하게 배신당했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서구 자유주의의 침투로 권력을 잃는 것을 두려워했다. 중국 공산당의 공포는 덩샤오핑의 개혁과 국가 경제 발전의 결과로 공산주의 이념이 퇴색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심화됐다. 지도부는 새로운 정당성이 필요했다.

타락하고 강요된 정당성

중국 공산당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오늘날의 중국을 건설하고 있는 당에 대한 영광의 전설을 만들었다. 공산당은 선택적인 역사를 내세워 서사를 강조하며 아편 전쟁, 애로우호 사건, 인도차이나를 둘러싼 중국 프랑스 전쟁, 한국을 둘러싼 중국 일본 전쟁, 의화단 사건 및 이후 베이징 봉기, 넓은 시베리아 지역을 러시아에 상실, 일본에 의한 만주 사변, 2차 중일 전쟁, 국민당과 내전 같은 이벤트를 인용한다. 중국 공산당은 역사적 서사를 외세에 의한 치욕이라 묘사하며 중국 국민의 감정을 자극한다. 또한 국민 사이에 보복 정서도 일으키고전설을 사용하여 민족주의 불꽃을 일으킨다. 중국 공산당은 5천년 한 문명의 영광을 서사에 담아낸다. 이러한 서사는 학술적 근거가 없지만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 필요한 정치적 사상 통제 장치다. 또한 중국 공산당이 한나라보다는 청나라를 계승했다는 사실도 무시한다. 청나라의 핵심적인 지배 계층은 몽골족, 티베트족, 위구르족 같은 많은 북방 민족들이었다. 현재 중국의 소수 민족 인구는 1억 명을 넘어섰으며, 이들은 한족 민족주의를 공유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중국 공산당은 강제적으로 잔인하게 동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역사적 보복 정서와 나날이 커지는 민족주의를 결합하여 해양을 중심으로 팽창주의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중국의 중심을 지키기 위해 광활한 해양 지역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로 해안 경비대를 이용하여 영토를 점령하고 통제함으로써 남중국해의 섬과 사주를 군사화하고 있다. 2012년부터 중국은 지역 내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일본이 관리하는 동중국해 센카쿠제도를 침범하며 일본을 괴롭히고 있다.

시진핑(Xi Jinping) 중국 주석은 중국의 팽창주의에 새로운 공세를 가하고 있다. 시 주석은 극단적인 마오주의 세대의 홍위병에 속하며 서구적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다. 사실, 시 주석의 통치 하에 중국 국민들은 서구 사회에서 지지하는 자유, 민주주의, 인권 같은 보편적 가치에 대해 논의할 수 없다. 시 주석은 2022년까지 임기를 연장하여 마오쩌둥 같은 독재자가 되려 한다. 그리고 마오쩌둥을 넘어서기 위해 타이완을 침공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2021년 4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카멀라 해리스(Kamala Harris) 미국 부통령과의 만남을 위해 스가 요시히데 당시 일본 총리가 탄 차가 워싱턴 DC 백악관에 도착하고 있다.

서방, 같은 생각을 가진 국가와 동맹

미국을 제외하고 중국을 단독으로 상대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중국은 약 2030년에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이 서방보다 클 수는 없다. 서방 국가들이 단결하고 여기에 자유 및 민주주의 진영의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뉴질랜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동참한다면 말이다. 중국의 인구 규모는 이미 정점에 도달했고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서방이 단결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국가들과 협력한다면 여전히 강대국 입장에서 중국과 교류할 수 있다. 서방을 어떻게 재결집시킬 것인가는 이를 위해 해결해야 할 첫 번째 핵심 전략적 문제다.

2016년 당시 아베 신조(Abe Shinzo) 일본 총리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 태평양 전략을 처음 공개하며, 산업 민주주의 국가이거나 적어도 자유 시장을 지지하는 인도 태평양 국가들이 결집하여 성장하는 인도 태평양 지역이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주요 부분을 차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전략을 실행하는 데 핵심 동맹국은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한국, 미국이다.

하지만 인도 태평양 전략의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도다. 조만간 인도는 중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로 등극할 것이며 평균 연령은 중국보다 10살 낮을 것이다. 또한 인도의 경제는 15 ~ 20년 안에 일본을 능가할 것이다. 인도는 1950년 중국의 티베트 침공을 잊지 않았으며 중국과 파키스탄의 긴밀한 관계에 대해 여전히 분노하고 있다. 중국이 서방에 맞서고 있는 가운데 인도는 비동맹 외교에 충실하면서도 서방과 가치를 공유하는 일본과 미국 같은 국가로 무게 중심을 점차 옮기고 있다. 인도를 포함한 향후 서방 전략 프레임워크는 전략적 이익뿐만 아니라 보편적 가치에 기반을 둘 것이다.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 대한 중국의 위협이 더 분명해지면서 같은 생각을 가진 국가들이 새롭고 확장된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예컨대 4자 안보 대화, 즉 쿼드는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일본, 미국 등의 현재 회원국을 넘어 성장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가치를 공유하고 상당한 군사 및 경제력을 보유한 유럽에서 시작해야 한다. 오커스로 알려진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미국 간의 새로운 삼자 안보 조약은 지역 방위에 귀중한 기여가 될 것이다.

10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은 새로운 거대한 지역 세력으로서 서방이 보다 주목해야 한다. 인구가 중국의 절반인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 회원국은 서로 다른 위협 인식과 전략적 이해를 가지고 있지만, 자유무역 파트너십을 추구한다.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은 강대국이 관련된 분쟁에 휩쓸리길 원치 않는다. 동시에 중국이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을 지류 국가로 만들려는 야망을 경계한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와 필리핀도 중국의 지류 국가였던 적이 없다. 10세기에 중국의 지배를 벗어난 베트남은 거대한 중국을 매우 경계하고 있다. 싱가포르와 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있지만 서방의 동맹국 또는 파트너국이다.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은 여러 해에 걸쳐 서방 국가와 화려한 다자 외교를 발전시켰으며 현재 많은 회원국들이 자랑스러운 민주주의 국가다. 따라서 서방은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 국가들과 교류해야 한다.

2021년 10월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 가상 정상 회의에서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인도 총리(가운데)가 연설하고 있다.

타이완 우발 사태 방지

21세기 인도 태평양의 가장 큰 과제는 중국의 타이완 침공이다. 시 주석은 마오쩌둥의 타이완 병합에 대한 꿈을 실현하여 마오쩌둥의 유산을 능가하려 할 수 있다. 인구 2300만 명의 타이완은 자국의 경제력과 민주주의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일례로 타이완의 반도체 산업은 글로벌 공급망의 필수 요소다. 타이완 국민의 자유나 타이완의 독특한 정체성에 관심이 없는 공산주의 독재자에게 타이완은 절대 잃을 수 없는 귀중한 존재다.

글로벌 리더로서 서방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타이완을 잃으면 전 세계 여론은 서방이 인도 태평양 전체를 중국의 독재에 내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타이완은 쉽게 침략할 수 있는 섬이 아니다. 타이완 섬은 오키나와섬 옆의 일본 화산 제도와 연결되어 있고, 타이완 동부에는 높이 4000미터의 산이 솟아있다. 타이완은 상륙 공격 장소가 제한된 바위섬이다. 그렇기에 중국 공산당은 전면적인 군사 공격을 즉시 개시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먼저 회색 지대 활동을 시작할 것이다. 중국은 외세의 개입이 핵심 국익을 침해하고 국내 문제에 간섭하는 것이라고 선언할 것이다. 중국은 중국에 대한 무력 사용을 비난하고 국민의 분노 때문에 국내에 있는 적국 국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발표할 것이다.

타이완 침공은 향후 몇 년 내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 주석의 세 번째 임기가 끝나는 2027년까지 중국의 군사력은 타이완을 지원하는 미국이나 다른 나라의 개입을 더욱 성공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할 것이다. 이 시기가 되면 침공은 실현 여부가 아니라 시기의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이러한 위기가 일어나면 일본은 여러 이유 때문에 즉시 개입하게 된다. 첫째, 중국은 센카쿠제도가 타이완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둘째, 일본의 요나구니섬과 사키시마제도의 일부는 타이완에서 110킬로미터 떨어져 있기 때문에 전쟁 지역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 중국은 지역 내 일본 자위대 기지를 무력화하려 할 수 있다. 셋째, 중국은 타이완 지원 작전에 사용되는 일본 내 미국 기지도 무력화하려 할 수 있다.

일본의 지도부는 평화와 안정이 일본의 안보에 필수적이라고 거듭 말했다. 스가 요시히데(Suga Yoshihide) 일본 총리와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 간 2021년 공동 선언에도 같은 메시지가 포함됐다. 이것은 중일 및 미중 정상화 전에 일본이 미국과 함께 주장한 것과 동일하다. 미일 동맹 조약에는 일본의 공동 방위 의무를 규정한 제5조뿐만 아니라 이른바 극동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미군이 일본 내 기지를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한 제6조도 있다.

여기서 극동은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했을 때 권력 공백 상태에 있었던 한반도, 필리핀, 타이완을 의미한다. 미국은 일본 내 기지를 이용하여 극동을 보호하려 했고 일본은 중국, 북한, 러시아의 거대한 공산주의 세력에 맞서기 위해 일본 주변 지역을 방치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지역 안보 구상은 미일 안보 협정에 처음부터 포함되어 있었다.

2021년 9월 3일 스가 총리가 사임한 직후 10월에 취임한 기시다 후미오(Kishida Fumio) 총리도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 양국의 안보 동맹을 강화하고 지역 안보에 협력하겠다는 일본의 의지를 확인했다.

2022년 3월 벨기에 북대서양조약기구 본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왼쪽)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먹을 맞대며 인사하고 있다.

향후 활동 과정

중국의 타이완 침공을 효과적으로 저지하기 위해 많은 연구와 전력 강화가 필요하다. 많은 우려도 처리해야 한다. 다음은 가장 근본적인 우려다.

첫째, 미일 동맹은 처음으로 타이완에 대한 중국의 실질적인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중국은 전보다 훨씬 강하며, 경제 규모가 미국에 근접했고 막대한 군사력을 구축하고 있다. 일본의 국방 예산은 GDP의 2퍼센트 이상으로 대폭 증액되어야 한다.

둘째, 미일 동맹의 지휘선이 한국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처럼 통일되어 있지 않다. 타이완의 우발 상황에 대한 시나리오 기반 작전 계획이 필요하며 양군의 새로운 역할과 임무를 정의해야 한다.

셋째,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타이완, 미국 사이에서 전략적 대화가 필요하다. 오커스의 회원국인 영국이 좋은 파트너가 될 것이다. 프랑스가 태평양 국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프랑스도 좋은 파트너가 될 것이다. 정치적 의지가 결집될 수 있다면 한국이 관여해야 한다.

넷째, 일본의 통합 작전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자위대의 통합 사령부는 2006년에야 설립됐으며 지상 자위대의 참모총장직은 2018년에 신설됐다. 이들을 더욱 견고한 제도로 만들어야 한다.
다섯째, 일본은 최근 육상자위대 내에 해병대형 여단을 창설했다. 이를 조만간 통합 계획에 포함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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