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에 울린 ‘경종’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필리핀 내 ISIS와의 싸움에 힘을 모으고 있다
포럼 스태프
필리핀군(AFP)은 2016년 6월부터필리핀 남부에서 테러 위협이 높아지는 징후를 포착했다. 이로부터 1년이 지난 2017년 10월, 정부군이 5개월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마라위를 수복한 후 위협의 실체가 완전히 드러났다.
많은 인도 태평양 지도자들이 오랫동안 우려했던 위험의 실체가 다량의 무기, 외국인 전사의 존재, 잔인한 민간인 참수 현장 등 테러 조직의 각종 증거를 통해 증명됐다. 이라크 시리아 이슬람 국가(ISIS)에 충성하는 전사들이 중동에서 기반을 잃으면서 동남아시아에 이슬람 국가를 세우거나 적어도 강력한 추종 세력 구축을 시도 중인 것으로 보인다.
2017년 6월 호주 전략 정책 연구소 행사에서 미국 태평양 사령부(USPACOM) 사령관 해리 B 해리스 주니어 미해군 제독은 “마라위는 인도 태평양의 모든 국가에게 경종을 울렸다”며 “테러리스트들은 중동에서 우리가 본 전술을 사용하여 민다나오 마라위에서 살인을 저질렀다. ISIS의 영감을 받은 반군들이 이러한 규모로 한데 모여 싸운 첫 번째 사례”라고 말했다.
이번 전투는 2017년 5월 필리핀 정부군이 아부 사야프지도자이자 ISIS가 필리핀 에미르(지도자)로 임명한 이스닐론 하필론의 체포를 시도하면서 시작됐다. 하필론의 전사들은 필리핀 경찰과 군인에게 총격을 가했고 또 다른 ISIS 추종 세력인 마우테 그룹으로부터 병력을 지원받았다. 마우테 반군은 민간인을 사살한 것과 더불어 마라위 시청과 민다나오 주립대학교 등 여러 건물을 점령했다.
- 막대한 사망자수: 로이터에 따르면 2017년 10월 정부군이 마라위를 탈환할 당시 사망자수는 1100명을넘어섰다. 극단주의 반군과 싸운 기동부대의 부사령관 로메로 브라우너 주니어 대령은 반군 920명과 정부군 165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민간인 45명은 반군에 의해 살해됐다. 전투가 끝난 후 AFP는 마라위 점령을 지원한 마우테 그룹의 핵심 지도자인 하필론 마우테 및 오마르카얌 마우테 형제를 사살했다고 밝혔다. 미국 관계자는 DNA 분석을 통해 하필론의 사망을 확인했다.
- 조직력을 앞세운 적: 더 스트레이츠 타임스 신문은 필리핀군이 공개한 영상에 마우테와 아부 사야프 그룹 지도자들이 마라위 공격을 계획하는 모습이 담겨있다고 보도했다. 전투가 시작되자 400~500명의 전사들이 마라위로 돌격했고 일부는 검은 ISIS 깃발을 흔들고 있었다. 필리핀군에 따르면 아부 사야프 및 마우테 그룹과 함께 싸우다 사망한 반군 중에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사우디아라비아 국민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 시가전: 테러리스트들은 급조 폭탄, 드론, 로켓추진유탄(RPG), 저격수, 연료 폭탄 등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사용됐던 시가전 전술을 도입했다. 더 스트레이츠 타임스는 2017년 6월 필리핀 해병들이 건물 탈환을 시도하던 중 연료 폭탄이 터졌으며 이들이 불길을 피해 건물 밖으로 나오자 저격수, RPG, 박격포의 공격이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전투가 끝났을 때 해병 13명이 목숨을 잃었다.
시리아와의 연계
미육군사관학교 연구 및 교육 기관인 테러대응센터(CTC)는 보고서에서, 동남아시아에서 ISIS 추종 전사들을 조직하려는 노력은 시리아의 조직원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칼리프 국가를 넘어서: 이슬람 국가가 공식 윌라야트 외부에서 벌이는 활동》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2014년 6월부터 2017년 4월까지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한 테러 계획과 공격을 분석한 결과 총 20건의 공격과 35개의 계획 중 60퍼센트가이슬람 국가 조직원과 연계되어 있다고 밝혔다. CTC 연구원 마리엘 네스는 보고서에서 “테러 공격 및 계획에 관련된 자들과 증거를 살펴보면 시리아의 이슬람 국가 조직원이 이슬람 국가에 동조하는 지역 내 조직과 개인에게 지시를 내리거나 자금을 제공하거나 이들과 접촉했다”고 적었다.
지역 내 테러 공격 중 약 절반이 필리핀에서 일어났지만 이웃 동남아시아 국가의 극단주의자들도 공격을 계획하고 있었다. 테러리스트들은 말레이시아(43퍼센트)와 인도네시아(37퍼센트)에서 많은 공격을 계획한 반면 필리핀 내 공격 계획은 14퍼센트에 불과했다.
CTC의 전략 이니셔티브 책임자 돈 라슬러는 포럼과의 인터뷰에서, 폭력적인 극단주의자들이 필리핀을 공격 대상으로 삼은 데에는 많은 요소가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ISIS는 필리핀에 지역 에미르(지도자)를 임명했지만 윌라야(행정주 또는 도)로 선언하지는 않은 상태다. 보고서는 “이 지역에서 이슬람 국가의 전략적 생존력은 소규모 네트워크에 영감을 주거나 더 크고 정착된 단체의 분파를 만들어 일련의 일회성 공격을 실행하는 것 외에도 오래된 지하드 전사, 특히 이 지역에 안정적인 도피처를 확보한 단체들과 어떤 관계를 수립하느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 지었다.
인도네시아에서 ISIS 조직원 나임이 지시한 버마 대사관 공격이 무산됐던 사례가 이 지역 내 ISIS 활동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CTC 보고서는 “이러한 역학은 이슬람 국가도 다른 지하드 단체처럼 로힝야 문제를 기회로 여긴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결론 내렸다.
- 2017년 9월 호주는 필리핀에 군대를 보내 군인 훈련을 제공하고 정보를 공유하겠다고 발표했다. 마리스 페인 호주 국방부장관은 ISIS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 지역이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페인 장관은 “필리핀이 테러리스트 위협으로부터 자국을 지키려는 노력을 적극 지지한다”며 “이것은 지역에 대한 위협으로 우리 모두가 협력하여 물리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보다 앞서 2017년 6월 호주는 테러리스트 수색을 위해 마라위 상공에 AP-3C 오리온 정찰기 두 대를 보냈다. 로이터는 2017년 6월 미국도 약 300~500명의 군대를 필리핀에 파견해 정보, 수색, 정찰 분야를 교육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P-3 오리온 정찰기도 AFP 작전에 정보, 수색, 정찰 지원을 제공했다.
- 2017년 7월 호주,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뉴질랜드, 필리핀의 관계자들이 인도네시아에서 하루 동안 정상회담을 갖고 폭력적인 극단주의에 맞서기 위한 공동 서약에 서명했다. 이들 국가들은 정보 공유를 강화하기 위해 외국인 전사 전략 포럼을 마련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정보 공유 대상에는 외국인 전사 관련 기존 데이터가 포함되며 테러리스트의 국경간 움직임에 대한 새로운 데이터베이스도 구축될 수 있다. 더불어 해당 국가들은 테러 공격 계획이나 외국인 전사 지원 등의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는 테러 방지법을 제정하기로 약속했다.
- 지역 내 해상에서 해적, 테러, 기타 국가간 범죄 같은 비전통적인 위협에 대응하여 지역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2017년 6월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정부는 삼국 해양순찰대 인도말피를 출범했다. 더 필리핀 스타 신문은 이 세 국가가 연락 장교 교환, 합동 본부 수립, 정보 공유에도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 2017년 11월 말레이시아는 호주 및 인도네시아와 함께 제3차 테러 자금 차단(CTF)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2017년 CTF 정상회담에는 금융 정보 전문가와 정책, 규제, 사법, 국가 안보 기관의 고위 대표자들이 참석했다. 산업 부문에서는 금융 서비스, 금융 기술(핀테크), 규제 기술(레그테크) 교수 및 학자들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