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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 국내에서 잘 사는 것보다 해외에서 고된 삶이 더 낫다고 전해

AP 통신

중국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했던 한 북한 여성은 자신의 몸을 더듬고 강제로 취하게 만들려는 남성 고객을 참아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두 북한 주민들은 러시아 벌목 캠프에 같은 북한 사람의 차가운 시신을 보관했다고 회상했습니다. 또 다른 북한 주민은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쿠웨이트 건설 현장에서 하루에 16시간까지 작업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모든 삶이 힘들었지만 이들 4명의 노동자들은 북한에서 사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실제로 본국에서 지위를 나타내며 모두가 탐내기 때문에 뇌물과 연줄을 동원하여 차지하려 합니다.

“12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웨이트리스가 됐습니다. 북한에서 이 일을 보는 시각은 여기와 판이하게 다릅니다”라고 2000년대 초 중국 다롄 시에서 북한인이 운영하던 레스토랑에서 일하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이숭희(42세)씨는 말했습니다. “북한의 여성들은 외국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것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습니다.”

이씨와 대한민국으로 탈출한 다른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북한 주민의 시각으로 본 삶이 얼마나 다른지 알려줍니다.

북한은 외화 벌이라는 목적으로 수만 명의 노동자를 해외로 보냈습니다. 인권 단체는 이러한 노동자를 현대판 노예로 부르며 북한 국내의 인권 탄압도 비난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어떤 고난이 더 나은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여지가 없습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해외에서 일한 탈북자들은 인터뷰에서 급여의 대부분을 북한 당국에게 바쳐야 했으며 약속한 급여의 일부를 전혀 받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때로 야간에도 일하며 돈을 벌어야 했지만 그래도 북한에서 버는 것보다 훨씬 많이 벌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상대적으로 배불리 먹었고, 감시가 덜 엄격했고, 드물지만 세계를 볼 기회가 있었으며, 북한에 대한 진실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씨는 해외에서 경험으로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 남편이 더 나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었습니다. 다른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3년간 일한 후 텔레비전, 카세트 플레이어 그리고 냉장고를 사려했었습니다.

“해외에서 일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좋은 담배를 피고 맥주를 마시는 것을 봤습니다”라고 1990년대 말 쿠웨이트 건살 현장에서 일했던 임일씨는 말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이것은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일반 북한 노동자의 평균 월급여는 미화 1달러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탈북자들은 전합니다.

“우리 시각에서 이것은 노동 착취입니다. 하지만 북한 주민에게 해외로 가는 것은 특혜입니다. 북한에서 끔찍한 삶을 피할 수 있는 기회로 보는 거죠”라고 서울에 기반을 둔 아산 정책 연구소의 고명현씨는 말했습니다. 북한은 노동 착취를 부정하며 국제 사회의 비판을 체제를 붕괴시키려는 모략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정보 당국은 주로 러시아와 중국을 중심으로 약 50여 개 나라에 5만에서 6만 명의 북한 노동자가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북한 노동자들은 중국 공장과 식당 그리고 러시아 벌목 캠프와 건설 현장에서 일합니다. 또 다른 노동자들은 중동의 건설 현장에서 일하거나, 아프리카에서 거대한 정치적 조각상을 만들거나, 태권도를 가르치거나, 의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월 평균 수입은 미화 120에서 150달러로 추정된다고 아산 연구소는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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