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기사

마라위 교훈

다닐로 G 파모나그(Danilo G. Pamonag) 전 중장이 제2차세계대전 후 필리핀 최대 군사 작전에서 배운 교훈을 공유한다.

포럼 스태프

마라위 사태 고조기에 지하디스트 반군은 민간인 1770여 명을 인질로 잡고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만다나오의 남부 도시를 장악했다. 반군은 민간인 일부를 즉시 사살하고 일부는 인간 방패로 사용했다. 반군은 민간인에게 폭탄을 만들고, 터널을 파고, 물자를 확보하는 일을 시켰다.

다닐로 G 파모나그 전 중장은 2019년 1월 전역했다. 필리핀군

필리핀 정부군은 필리핀에 기반을 둔 급진주의 반군 아부 사야프 그룹의 지도자 이스닐론 하필론(Isnilon Hapilon)을 체포하는 데 실패했고, 이후 무슬림 거주지 마라위에 대한 최초 침공은 2017년 5월 23일에 일어났다. 이슬람 국가는 이스닐론 하필론을 에미르, 즉 동남아시아의 군 사령관 또는 적어도 테러리스트들이 동남아시아 이슬람 국가로 부르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를 포함하는 지역의 에미르로 임명했다.

라나오델수르주에 기반을 둔 필리핀 반군으로 구성된 마우테 그룹은 2년 전에 이슬람 국가와 하필론에 대한 충성을 발표하고 동남아시아에 칼리프 통치국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나중에 공개된 비디오 증거에 따르면 마우테 지도자 오마르(Omar)와 압둘라 마우테(Abdullah Maute), 아부 사야프 조직원, 이슬람 국가와 연계된 필리핀 및 외국인 반군은 주도 마라위를 점령할 계획을 오랫동안 세우고 있었다. 그들은 마라위 곳곳에 무기와 물자를 숨겨 두었다.

연합 반군은 하필론이 체포를 피한 5월의 어느 날에 마라위를 공격하여 이슬람 국가 국기를 올렸다. 정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반군은 건물을 태우고, 교회를 훼손하고, 20만 명이 넘는 마라위 주민을 집에서쫓아내려 했다.

필리핀군 남부 루손 사령부 다닐로 G 파모나그 전 중장은 마라위를 탈환하려면 반군으로부터 주민들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2013년 9월 삼보앙가 사태 시 필리핀군 지상군 사령관으로 처음 임명되어 민다나오에서 인질을 구출한 경험이 있었다. 그의 지휘 아래 필리핀군 대원들은 모로민족해방전선 조직으로부터 인질 197명 중 195명을 구출하고, 10만 명 이상의 이주민이 발생하고 민간인 여럿이 살해당한 사태를3주도 안 되어 종식시켰다. 파모나그 전 중장은 이를두고 “완벽한 승리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파모나그 전 중장이 지상군 사령관으로서 두 번째 맡은 마라위 사태는 이전과는 달랐다. 로드리고 두테르테(Rodrigo Duterte) 필리핀 대통령이 마라위 점령 당일 민다나오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했지만 전투는 수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외국인 테러리스트 전사가 자생 테러리스트와 힘을 합치면서 싸움이 더 어려워졌다. 2013년 삼보앙가 사태 시 전투와 비교하면 마라위 사태에서의 적의 기술과 전술은 훨씬 개선됐다”고 파모나그 전 중장은 포럼에 말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마닐라 전투 이후 필리핀군 최대 시가전을 지휘하게 됐다. (그는 삼보앙가에서 두 번째로 큰 시가전도 지휘했다.)

적 전술

반군은 전략적인 이유로 마라위를 선택했다. 마라위는 필리핀에서 가장 가난한 주에 위치해 있으며 오랫동안 무슬림 특수성과 외세 저항의 전통을 지켜오며 무법이 일상이 되어 있었다. 필리핀에서 유일하게 이슬람 도시로 선포된 마라위는 사태 당시 주민 99퍼센트 이상이 무슬림이었다. 필리핀의 전체 인구 중 약 11퍼센트가 무슬림이며 민다나오의 경우 23퍼센트가 무슬림이다. 민다나오의 무슬림은 40년 이상 종종 폭력적인 수단을 이용하여 필리핀으로부터 독립을 추진했다. 비정부 기구 국제위기그룹의 분석에 따르면 민다나오에 새로운 방사모로 자치구를 수립하기 위해 2014년에 체결한 최신 평화 협정의 실행이 지연되자 반군들은 이곳의 오래된 무슬림 불만을 이용하려 했다.

지하디스트들은 마라위에서 인질을 잡은 것 이외에도 필리핀군이 이전에 경험했던 것보다 더 정교한 전술, 기술, 관행을 사용했다. 반군은 강력한 저격용 소총과 조준경으로 필리핀군의 진군을 늦췄다. 또한 반군은 건물과 필리핀군의 예상 접근로에 수많은 사제 폭발물을 설치했으며 멀티로터 드론으로 필리핀군의 전열을 정찰했다. 반군은 방탄복과 야간 투시경을 사용했고,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이자 마라위가 있는 라나오호를 수영으로 건너기 위해 부유 장치도 사용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마라위를 “테러리스트 영향”으로부터 해방시키겠다고 발표한 지 며칠이 지난 2017년 10월 21일에 필리핀 해병대가 마라위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로이터

파모나그 전 중장은 반군이 시가전 군영을 과시했다고 말했다. 반군은 위치를 바꾸기 위해 건물 벽을 뚫었고 지하실과 상호 연결된 지하 터널을 이용하여, 미군과 오스트레일리아군의 지원을 받는 필리핀 공군의 공습을 피하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반군은 건물에 불을 질러 필리핀군을 고립시키고 이동과 퇴각 중에 시야를 가렸고 지구력 유지를 위해 불법 약물을 사용했다. 반군은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여 대중의 지지를 확보했다.

더욱 강력히 세뇌된 반군은 과거 필리핀군과 싸웠던 반군보다 더욱 잔인한 성전(聖戰)을 펼쳤다. 파모나그 전 중장은 “반군은 인간성과 연민의 이해를 벗어나 더욱 야만적이고 잔인해졌다. 전사한 필리핀군을 태우고 참수하고, 여자 인질을 강간하고, 종교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비무슬림 인질을 죽였다”고 말했다.

도심 대응

하지만 파모나그 전 중장은 반군을 능가할 방법을 찾았다. “우리는 많은 혁신을 시행했다. 그것이 우리의 비밀 무기였다. 정교한 무기는 없었지만 창의력을 십분 발휘했다.”

예를 들어 파모나그의 대원들은 드론을 사용하여 주요 인질 집단을 찾았다. 필리핀군은 드론에 휴대전화 사용법과 끈 절단용 칼을 부착한 휴대전화를 매달았다. 휴대전화에는 한 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다. 인질들은 당일 오후에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필리핀군은 자정까지 인질 18명을 구출했다.

파모나그 전 중장은 “우리에게 큰 승리였다. 전장에 대해 더 자세히 파악할 수 있었다. 반군의 은신처, 지도자의 이름, 지도자의 정체, 지도자의 은신처, 낮에 하는 활동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필리핀군은 그때까지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작전을 진행했다.

도시 환경에서 싸우는 것도 필리핀군에게 큰 어려움이었다.

파모나그 전 중장은 “시가전은 재래식 전투보다 복잡하고 힘들다. 필리핀군은 주로 정글 작전 훈련을 받았다. 주민들이 있는 새로운 도시 환경에서 적과싸우기 위해서는 기존과는 다른 사고 방식, 접근법
및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라위의 경우 105mm 자주포는 곡사포기 때문에 쓸모가 없었다. 파모나그 전 중장은 “100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싸웠기 때문에 쓸모가 없었다. 우리는 건물들 사이에서 싸워야 했다”고 말했다.

필리핀군은 플라스틱 라면 포장용기를 사용하여 무기를 직사 화기로 개조했다. 그는 “도시 경험을 가진 부대가 있었지만 시가전 훈련을 받지 않은 대원들은 주 전투 지역에서 일주일 동안 훈련을 받았다.

이슬람 국가를 추종하는 지하디스트에 의한 마라위 사태가 끝난 지 2년이 지났지만 마라위 대부분은 여전히 폐허로 남아있다. AFP 통신/GETTY IMAGES

이들은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바로 투입할 수 없었다. 그래서투입 전 훈련을 받게 했다”며 “시가지에서 싸우기위해 새로운 기술과 절차를 매우 신속히 채택해야했다. “그리고 전장에 이미 적이 있는 상황에서전투 방법과 수단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다”고말했다.

거리 상태 때문에 장갑차도 무용지물이 됐다. 필리핀군은 2층 건물에 장갑차를 배치하기 위해경사로를 만들고 더 높은 유리한 지점에서 사격했다. 파모나그 전 중장은 “정교한 무기를 이용해 승리를 거머쥐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당시 임무 완수에 가장 강력한 무기는 대원들의 혁신, 창의성, 주도성, 적응력이었다. 혁신적인 방법을 찾고, 더 현명하고 민첩하게 행동하고, 예측을 벗어나고, 변화하는 분쟁에 적응해야 했다”고 말했다.

헌신적인 대원

이슬람 국가를 추종하는 반군의 야만성에 필리핀군은 결의와 다짐으로 맞섰다. 파모나그 전 중장은 “성공의 또 다른 요인은 필리핀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 결연히 싸우겠다고 일어난 대원들의 ‘각오’였다. 부상자 2000명 중 70퍼센트가 전장으로 복귀하여 다시 싸웠다”고 말했다.

필리핀군의 결의는 확고했다. “대원들의 결의를 느낄 수 있었다.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부상자들의 상태를 물었고, 그들과 여러 차례 대화했다. 부상자들은 복귀하고 싶어했다. 일부 대원들은 병원을 무단 이탈하여 전장에서 싸우기 위해 돌아왔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방문도 변화를 가져왔다. 파모그나 전 중장은 “대통령은 주 전투 지역 내부를 방문했다. 주 전투 지역 안에서 대통령을 지키는 것은 끔찍했다. 말로 사기를 높이는 것은 부족하다. 하지만 필리핀 대통령은 직접 싸우려 했다”며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대통령이 헬멧을 쓰고 전투 지역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는 대원들에게 큰 동기가 됐다”고 말했다.

2019년 5월 11일 라나오델수르주 마라위의 그랜드 모스크 지붕 위를 필리핀군이 걷고 있다. 로이터

전환점

파모그나 전 중장은 처음으로 인질 다수를 구출한 것이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 “인질들을 구출하기 시작하면서 승리가 손 안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두 달 동안은 주 전투 지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파모나그 전 중장에 따르면 그것은 삼보앙가에서 했던 체험과 비슷한 것이었다. 인질들을 구출하기 시작하자 그는 승리를 직감했다. “마라위 사태에서도 같았다. 두 달 후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인질 구출은 좀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인질들이 전투 지역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평화 회랑을 만들었다. 이 작전을 세 차례 실시했고 반군들이 풀어준 인질 대부분이 무슬림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이 짧은 휴전 기간 중 반군은 기독교인을 인질로 잡고 무슬림은 풀어주었다. 이로써 반군은 민간인에 대한 종교적 권위를 강화했다. 그는 반군이 이슬람 경전이나 기도문 낭송 등 종교 시험에 실패한 인질을 즉결 처형하곤 했다고 설명했다.

필리핀군 지휘관들이 대원과 주 전투 지역에 갇힌 민간인의 사망 및 부상과 재산 피해를 최소화하려 했기 때문에 군사 작전은 장기화됐다. 파모나그 전 중장은 “마라위 내에 모스크가 35개 있었지만 한 곳도 폭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파모나그 전 중장은 사태가 끝날 때까지 필리핀군이 전투 지역에서 민간인 1777명을 구출했다고 말했다. 전투가 거의 5개월 동안 지속되던 2017년 10월 17일, 두테르테 대통령은 테러리스트로부터 마라위를 탈환했다고 발표했다. 바로 전날 필리핀군은 주요 사령관 하필론과 오마르 마우테를 사살했다. 이슬람 국가와 마우테 지도자를 처리했지만 거의 일주일 동안 전투는 산발적으로 계속됐다.
마라위는 첫 공격을 받은 지 정확히 5개월 뒤인 2017년 10월 23일 공식적으로 재탈환됐다. 필리핀군은 검은 이슬람 국가 깃발을 찢었고 델핀 로렌자나(Delfin Lorenzana) 필리핀 국방부 장관은 종전을 발표했다.

분쟁 초기 탈출한 두 명을 제외하고 반군 지도자들은모두 사살됐다.

파모나그 전 중장은 “초기에 병력이 부족하여 반군 지도자들이 빠져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AP 통신에 따르면 빠져나간 반군 지도자 중에는 아부 다르(Abu Dar)도 있었다. 그는 또 다른 친 이슬람 국가 그룹의 지도자였으며 하필린의 뒤를 이어 동남아시아의 이슬람 국가 에미르가 될 예정이었으나 2019년 3월 사살됐다.

2019년 6월 5일 임시 기도 천막에서 마라위 난민들이 라마단 종료를 축하하고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난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식수, 든든한 생계 기회, 영구 거주지라고 밝혔다. AFP 통신/GETTY IMAGES

필리핀군은 인질 대부분을 구출한 것과 더불어 분쟁을 마라위에 제한하고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지 않게 막는 데 성공했다. 또한 또 다른 반군 분파가 마라위 반군에 참여하거나 강화하는 것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모든 것이 필리핀군 전략 요소였다. 필리핀군은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모로코,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출신의 외국인 전사 32명을 포함하여 총 920명의 테러리스트를 사살했다. 더불어 850개의 고화력 화기와 100개의 기타 무기도 압수했다.

파모나그 전 중장은 “성공에 기여한 요인이 매우 많다”고 말했다. 파모나그 전 중장은 “다자 및 기관 간 접근법을 통해 모든 조직이 협력할 수 있었다. 중앙 및 지방 정부 기관, 국내 및 국제 비정부 기구, 모든 정부 기구 덕분에 국민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모든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모두에게 캠페인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주어 작전의 정당성을 지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라위 주민들이 지불한 무거운 대가는 한동안 그 그늘을 드리울 것이다. 적어도 165명의 필리핀군 및 경찰 그리고 87명의 민간인이 전투 중 사망했다. 마라위와 주변 지역에서 40여 만 명이 집을 버리고 떠났고 이 중 절반이 내국인 난민으로 파악된다. 마라위 절반이 파괴됐고 나머지 지역은 불발탄으로 인해 사람이 살 수 없는 불모지가 되었다.

복구 노력

마라위가 탈환된 지 2년이 지난 현재, 재활 및 재건 작업이 진행 중이다. 20만 명의 내국인 난민 중 상당수가 지금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으며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많은 난민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할 거라고 걱정하고 있다. 특히 상당한 규모의 천연 가스 매장량을 비롯한 민다나오의 풍부한 천연 자원에 관심이 있는 중국 컨소시엄이 재건 계획을 주도할 수 있게 되면 더욱 그렇게 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파모나그 전 중장은 필리핀군이 전투 후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필리핀군은 치안을 제공하여 내국인 난민의 가혹한 상황을 완화하고, 주 전투 지역을 정리하고, 사회 안전을 도모함으로써 재건과 재활이 이루어지게 할 수 있다. 필리핀군은 앞으로 이러한 유형의 분쟁이 결코 재발하지 않게 경계 태세를 유지할 것이다”고 말했다.

파모나그 전 중장은 특히 특수 부대가 재건 활동에 공동체 방어 구축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평시에 특수 부대는 공동체를 지키고 주민의 마음과 신뢰를 얻기 위한 재건 작업을 담당할 수 있다. 특수 부대는 분쟁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민군 작업이 진행되는 분쟁 후 상황에 가장 효과적이다.

파모나구 전 중장은 이슬람 국가와 이를 추종하는 국내 반군이 여전히 같은 이념을 가지고 있으므로 필리핀이 이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반군들은 잠재기에 있다. 표면적으로는 모든 일은 잘 진행되고 있지만 반군들은 은밀히 계획을 수립하고 교화를 계속하고 있다”며 “모든 단계의 정부와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범정부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필리핀이 테러와 싸우고 있는 다른 나라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필리핀 정부는 민다나오의 계엄령을 2019년 말까지 연장했다.

전투 후 상황

파모나그 전 중장은 2019년 1월 전역했다. 그는 자신이 지휘했던 두 차례의 도시 탈환 작전을 늘 기억할 것이다. 그는 삼보앙가와 마라위 사태로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군인이 가장 고귀한 직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입대했다. “아버지가 군인이셨기 때문에 입대했다. 나는 일곱 형제 중 막내다. 제일 큰 형도 군인이었다. 평생을 군에 복무한다는 것은 매우 숭고한 일이다. 기꺼이 목숨을 바치려는 직업은 많지 않다.”

“내게 군 입대는 최고의 결정이었고 일생 중 내게 일어났던 가장 좋은 일이었다. 나는 37년 8개월 동안 복무했고 단 하루도 입대를 후회하지 않았다. 나는군에서 완전한 남자가 됐다.”

그의 전역일에 필리핀 사회복지부 장관은 그에게 군 경험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임무를 맡겼다. 파모나그 전 중장은 “사람들의 감정을 알아야 한다. 원주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봐야 한다. 나는 가난한 지역에 가본 경험이 있다”며 “나는 전투 지휘관에서 상황, 복지, 개발을 담당하는 사회복지사로 변신했다. 완전히 새로운 임무라는 점에서 이 새 직업이 벌써 마음에 든다. 특히 도움이 필요한 필리핀 형제자매들에게 부서의 손을 뻗어 이들을 도울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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